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기자의 시각] 박범계 장관의 ‘엿가락 잣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고발 사주 의혹’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한동훈 검사장의 ‘모의 기획’이라며 작년 말 윤 전 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징계 자료를 사진 찍어 올렸다. 여기에는 윤 전 총장과 한 검사장의 통화 횟수,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숫자 등이 담겨 있었다.

이는 그간 언론에 공개된 적 없는 자료다. 어느 조직이나 감찰 및 징계 자료는 비공개 대상이다. 그런데 전직 장관이 민감한 법무부 내부 자료를 사진까지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 추 전 장관은 공무상 비밀 누설 등 위법 문제가 지적되자 금세 사진을 삭제했다. 하지만 현직 박범계 법무장관은 조직 내부 자료가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가 터졌음에도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다.

박 장관의 침묵은 그가 검찰의 수사 정보 유출을 수차례 “엄단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과 비교하면 더욱 도드라진다. 박 장관은 지난달 17일 검찰 수사 내용이 대변인을 통하지 않고 유출됐다고 의심이 들면 이를 진상 조사하고 내사할 수 있도록 법무부 훈령을 개정해 시행했다. 지난 5월 친정권 성향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김학의 불법출국 금지’ 사건 공소장이 언론에 공개되자 박 장관이 “불법 유출 의혹”이라며 추진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 ‘국정 농단’ 사건 등 통상 언론에 공개됐던 검찰 공소장은 작년 초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을 추 전 장관이 비공개로 막으면서 관행을 깼고, 박 장관은 이성윤 고검장의 공소장 보도에 대해 검찰 진상 조사를 지시한 뒤 법무부 훈령까지 바꿨다.

그랬던 박 장관은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윤 전 총장 처가 의혹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에 시시콜콜 보도되는 것에는 침묵하고 있다. 14일에는 작년 ‘채널A 사건’ 당시 압수수색 된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 20자리 비밀번호를 풀기 위해 수사팀이 이스라엘 포렌식 업체에 작업을 의뢰할 것이란 내밀한 내용이 친정권 매체에 보도됐지만 박 장관은 아무 말이 없다.

대신 박 장관은 국회에 나와 ‘고발 사주 의혹’ 관련, “손준성 검사가 고발장을 보낸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겠다”고 하는 등 이제 막 공수처 수사에 들어간 사건을 기정사실로 규정하며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간 정권에 불리한 사안에는 “수사 및 감찰 중인 사건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던 박 장관과는 딴판이다.

장관과 의원직을 겸직하는 박 장관은 지난 2월 “저는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박 장관은 국민 인권을 보호하고 법치를 수호하는 법무 장관이기보다 정권 지지층만 상대하는 민주당 의원처럼 충실히 행동한다. 그럴수록 박 장관이 무엇을 말하든, 그의 발언이 갖는 권위와 무게는 땅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국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