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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내일은 나를 죽일 겁니다”…두려움에 떠는 아프간 여성 공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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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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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지난달 20일 수도 카불에서 파손된 여성 포스터가 붙은 벽 앞을 지나고 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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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전 정부 당시 공직에서 일했던 여성들에 대한 탈레반의 표적 살해가 이어지고 있다. 아프간 여성들은 내일은 자신의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아프간 칸다하르, 카피사, 가즈니주에서 여성 경찰관 최소 4명이 탈레반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2일 보도했다. 앞서 아프간 전 정부와 NGO 관계자들에 대한 사면을 약속한 탈레반은 특히 여성 공직자들에 대한 협박과 폭력을 일삼고 이들의 일할 권리를 빼앗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지난달 15일 수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이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거 석방한 점도 보복 살해의 위험요인으로 떠올랐다.

아프간 수도 카불의 대테러 장교인 마리암 중위는 북부 지역이 탈레반에 함락된 지 하루 만에 협박 편지를 받았다. 탈레반이 풀어준 수감자들이 마리암의 아버지 앞으로 보낸 편지였다. 발신인은 마리암의 아버지에게 딸과 사위를 넘겨달라면서 “꼭두각시 정권을 위해 일했던 하인과 그의 남편을 넘겨주지 않으면 우리가 이들을 곧 죽여서 지옥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 미디어 조직인 룩샤나 미디어에 따르면 이 편지는 해당 지역의 탈레반 군 위원회에서 발행됐다. 마리암 중위는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2주가 넘도록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결국 그는 남편과 함께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도주했다. 마리암은 “동료 몇 명이 집에서 쫓겨나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어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최근 탈레반 대원은 임신 8개월차였던 여성 경찰관 바누 네가르를 가족들 앞에서 무참히 살해했다. 발흐와 카불 지역에서 8년 동안 경찰 생활을 한 파티마 아마디는 이를 두고 “탈레반은 다음날 또 다른 여성을 죽일 것”이라며 “죽기 전에 목소리를 높여 다른 여성들이 죽음을 겪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디도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성 상사 2명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마땅한 조치가 없었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경찰 신분증에 불을 지르는 영상을 올린 뒤, 오프라인에서만 세 차례 공격을 받았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 이혼 후 두 아들과 함께 사는 아마디의 유일한 수입인 경찰 월급은 탈레반의 재집권과 동시에 끊겼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왜 우리 아프간 여성들이 경찰 일을 하도록 독려했습니까. 세상은 우리의 목소리, 여경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아마디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도 위협받고 있다. 지난 2015년 탈레반이 쿤두즈주를 점령했을 때 아프간 여성 보호소에는 협박 전화가 쇄도했다. 탈레반 대원들은 최근에도 일부 여성 보호소를 찾아가 건물을 파괴했다. 익명을 요청한 바글란주의 한 여성은 “탈레반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 있지만, 피난처를 찾아줄 정부나 시스템이 없어 며칠 밤마다 잠자는 곳을 바꾸고 있다”며 “탈레반이 석방한 포로 등 죄수 중에는 내가 한 일의 결과로 형을 선고받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이 계속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 재건 특별감찰관(SIGAR)에 따르면 아프간에서는 여성 5000명 이상이 군사 분야에서 일했다. 1기 탈레반 정권이 축출된 2001년 이후 20년 동안 여성 4500명이 경찰로 복무했으며, 2000명이 군대에서 일했다고 가디언이 전 내무부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아프간 전 정부 당시 시민단체에서 일한 여성은 약 12만명으로 집계됐다고 개혁민원위원회는 밝혔다.

탈레반의 폭력에 직면한 아프간 여성들은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공적 지원의 부재 속에 아프간 풍자 작가인 무사 자파르가 자신의 SNS를 통해 위험에 처한 여성들에게 정보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명단을 만들어 단체 등과 함께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게시물을 올린 지 며칠 만에 여성들로부터 230건에 이르는 도움 요청이 쇄도했으나,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미 의회 의원은 현재까지 1명에 그친다고 자파르는 전했다. 그는 “이 여성들은 사회와 가족, 근무하는 기관에서도 차별받았고, 이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프간 여성들이 희생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을 버려두었다”고 지적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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