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디 캔터·메건 투히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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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숱한 성범죄 의혹으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했다. 추행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매번 단순한 바람기나 루머로 치부됐다. 실체는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밝혀졌다. 기사를 쓴 조디 캔터·매건 투히 기자는 피해자 등을 통해 관련 법적 기록과 이메일, 회사 내부 문건 등을 확보했다. 성추행과 성적 착취 혐의가 드러나자 많은 여성이 비슷한 경험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이나 학대 고백이 수치스럽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아니라는 믿음이었다. 여성들은 자유 의지로 과거 문제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고, 기업을 비롯한 여러 기관은 일제히 조사에 착수했다. 불변할 듯했던 권력을 쥔 남성들은 순식간에 실직자가 됐다. 그렇게 사회에는 성추행부터 사소한 농담까지 기존에 여성들이 감내했던 모든 행위가 잘못됐다는 공통 감각이 자리매김했다.
캔터·투히 기자가 쓴 '그녀가 말했다'는 협력 취재의 연대기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인터뷰 녹취록, 이메일 등 각종 기록을 바탕으로 와인스타인 취재를 직접적이고 진실하게 담아낸다. 어떤 정보를 어떤 출처와 기록으로부터 얻었는지 미주에 자세히 설명할 정도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과거가 아닌 오늘에 대한 고찰이다. 미투 운동은 우리 시대 사회 변화의 한 예였다. 이를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기도 했다. 균열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과 보호 조치를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을까?
두 저자는 새로운 질문에 집중한다. 미투 운동으로 사회가 얼마만큼 변화했느냐다. 섹스와 권력에 관한 낡은 법칙 일부는 분명 사라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 새로운 법칙이 등장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행동을 면밀히 살펴야 하며, 책임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등이다. 합의는 이제 막 시작 단계다. 이곳저곳에서 논의가 한창 진행된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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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의 창시자는 타라나 버크다. 강한 연대로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과 치유를 고취하고자 했다. 지금은 언어폭력부터 불편한 데이트까지 광범위한 고발에 잡다하게 사용된다. 어디까지가 직장 내 위반행위인지조차 확실치 않다. 언론 기사도 다르지 않다. 온라인 매체 베이브는 2018년 1월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아지즈 안사리가 '그레이스'라는 가명의 여성을 성추행했다고 전했다. 보도 뒤 안사리의 행동이 성폭력 범주에 들어가는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그레이스는 베이브에 "(안사리와의 하룻밤이) 어색한 성 경험이었는지 성폭력이었는지를 두고 고민했다"라며 "이 일이 성폭력이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애틀랜티스 등 다른 매체들은 '후회한다고 해서 합의가 없었다고 말할 순 없다'라는 식의 논조로 그레이스의 주장을 반박했다. 두 저자는 우려한다.
"한 익명의 고발자가 이야기한 단 한 가지 사건에만 집중한 기사는 또 다른 딜레마를 보여줬다. 심도 있는 취재와 공식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폭로 기사를 쓰는 언론사도 많지만, 대부분은 단 한 명의 취재원이나 익명의 고발자에 의존해 훨씬 낮은 기준으로 기사를 뱉어낸다. 기사가 발행된 뒤 부가적인 혐의나 잘못에 대한 더 많은 증거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기사가 빈약하고 편파적으로 보였으며, 따라서 이런 혐의를 받은 이들은 공정성 여부를 묻게 된다. 근거도, 고발당한 쪽의 응답도 없이 소셜미디어에서 가해자를 지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적잖은 이들은 변화가 아직 멀었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태도가 달라지고 매일같이 극적인 고발이 헤드라인을 장식해도 근본적인 것들은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실제로 성추행을 규제하는 몇몇 법규는 시대에 맞지 않으며 고르게 집행되지도 않는다. 약간의 수정 외에 당분간 바뀔 것 같지도 않다. 기업이나 학교가 문제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은 둘째치고,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대중의 의견 일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두 저자도 양쪽 모두에게 부당하다는 감정만 누적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명확한 절차 또는 규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기자들이 개입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영구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며….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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