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 법정통화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비트코인 반대 문구를 적어 놓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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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12년 역사상 가장 큰 실험의 막이 올랐다. 지난 7일(현지시간)부터 중남미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진짜 돈’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공용 통화인 미국 달러처럼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사거나 세금을 낼 수 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트위터로 ‘#비트코인의 날(BitcoinDay)’ 이란 해시태그를 올리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출발부터 삐걱댔다. 엘살바도르 정부가 국민들의 비트코인 사용을 위해 만든 전자지갑 애플리케이션 ‘치보’의 다운로드가 이날 새벽 서버장애로 막혔다. 이날 자정을 기해 비트코인이 법정통화로 도입된 지 몇시간만의 일이다. 부켈레 대통령은 치보의 서버 용량을 늘리는 동안 작동을 멈춘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정화폐 비트코인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날 오전에는 시민 1000여명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시위대는 경찰의 진압에 맞서 타이어를 불태우고 폭죽을 터뜨리는 등 강하게 저항했다.
7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 데이'라는 제목의 신문이 가판대에서 진열돼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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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 도입이 자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홍보해왔다. 미국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러를 막대하게 푸는 탓에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고 주장하는 부켈레 대통령은 미국의 달러 살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트코인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송금 수수료를 줄이려는 이유도 있다. 해외에서 일하는 자국민이 보내는 송금이 엘살바도르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넘는다. 여기에 따라 붙는 수수료만도 상당하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하며 이런 수수료를 연간 4억 달러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7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 법정통화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비트코인 반대 문구를 적어 놓은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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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심은 다르다. 엘살바도르 센트랄아메리칸대학(UCA)이 1281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따르면 정부의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 결정에 ‘매우 반대’(22.7%)하거나 ‘반대(45.2%)한다는 응답이 3분의 2 이상이었다.
국민은 비트코인 도입으로 빈부 격차가 확대될 것을 우려한다. 비트코인이 법정화폐가 되면 비트코인의 가격 급등에 따른 차익에 자본이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반대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로이터통신에 “비트코인은 부자들을 위한 통화”라며 “투기세력에게나 적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사용하기 위한 인프라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이터는 “인구 절반이 인터넷 접속을 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현금거래만 하는 엘살바도르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비트코인에 접근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엘살바도르 상공회의소 임원 호르헤 아스분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고객이 비트코인으로 결제를 원한다고 해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정부가) 이해관계자나 민간과 협의 없이 성급하게 추진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신용평가사 무디스, 피치 등은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사용은 돈 세탁 등 불법적인 거래에 이용될 것이라 우려해왔다.
7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비트코인 결제 전용'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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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비트코인 가격 변동이 심상치 않다. 암호화폐 사이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8일 오후 4시 33분 현재 4만6538달러로 24시간 전에 비해 13.25% 폭락했다. 엘살바도르의 법정통화 채택이 가격에 반영된 상황에서 실제 시행을 앞두고 불안한 투자자의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영국의 금융서비스 회사인 하그리브스 랜스다운은 코인데스크에 “비트코인의 변동성 때문에 엘살바도르 많은 국민이 법정 통화 채택에 낙관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업체 밸커리 인베스트먼트의 리아 왈드 최고경영자(CEO)는 “관건은 중남미 다른 국가가 비트코인을 통화로 채택할지 여부”라고 지적했다. 만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법정통화로 채택하는 움직임이 확산하면 가격이 오르고 여러 나라의 법정 통화 채택이 늘어나는 선순환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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