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구적인 규율주의자이며 격렬한 웅변가
하이바툴라 아쿤자다. © 로이터= 뉴스1 |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탈레반 최고 지도자인 하이바툴라 아쿤자다의 알려진 유일한 사진 중 하나에서 그는 카메라를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말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탈레반이 7일 새 정부를 공개했을 때 드러난 수수께끼의 인물인 아쿤자다는 2016년 이후 탈레반의 정치, 종교, 군사 문제에 대한 최고 지도자의 역할을 유지했다.
아쿤자다는 탈레반이 내각 구성 이후 내놓은 첫 성명에서 "우리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프간을 재건할 것이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아프간 재장악 후 첫 발언이다.
그는 탈레반이 앞으로 아프간의 모든 통치를 규제할 이슬람 율법과 충돌하지 않는 모든 국제법, 조약, 그리고 공언을 지키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파 성직자인 아쿤자다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나이는 60세 전후로 추정된다.
그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20년 만에 아프간을 떠나는 협상을 벌일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동료들이 회의를 주도하도록 했다.
하지만 탈레반을 연구해온 일부 분석가는 그가 군사적인 승리를 앞두고 국제 동맹국들과 적들에 대한 대처와 탈레반 내부의 분열을 치유하는 지도자였다고 말한다.
싱가포르 난양 기술 대학의 로한 구나라트나 교수는 "간계과 속임수와 조작과 인내를 통해서 그는 탈레반을 다시 집권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가 탈레반 내에서 권력이 유동적인 시기에 타협을 위한 인물로 선정된 것이며 실권은 탈레반 군부가 쥐고 있다고 말한다.
인도의 싱크탱크인 평화분쟁연구소의 남아시아 안보 전문가인 라제스와리 크리슈나무르티는 "아쿤자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며 "그의 임명은 탈레반 내 권력 구도 전망 논쟁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아프간 제2의 도시인 칸다하르의 엄격한 종교 가정에서 태어난 아쿤자다는 아프간 내전의 잿더미 속에서 주변 남부 헬만드에서 나타난 이슬람 극단주의 운동인 탈레반의 초기 멤버였다.
유엔에 따르면 1996~2001년 탈레반이 집권하면서 여성의 노동을 금지하고 돌멩이를 던져 죽이는 처벌을 가하는 엄격한 샤리아 율법을 시행했을 때 아쿤자다는 사법부 최고 책임자로 일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탈레반의 축출로 아쿤자다는 파키스탄으로 도피해 15년 동안 이슬람 사원에서 가르치고 설교했다. 당시 로이터는 이를 단독 보도했다.
그의 이슬람 사원의 동료들과 학생들은 아쿤자다를 학구적인 규율주의자이며 격렬한 웅변가로 묘사했다.
한 제자는 2014년 퀘타에서 열린 공개 집회에서 "그는 미국과 전쟁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했고 지하드(성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무인기 공격으로 지도자 물라 아크타르 만수르가 사망한 후 2016년 탈레반 고위 간부들이 새로운 수장을 임명하기 위해 만났을 때도 아쿤자다는 눈에 띄는 발탁이 아니었다.
아쿤자다는 강력한 대규모 세력인 누르자이 부족 출신이지만, 그는 이전 지도자들과는 달리 군인보다는 학자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탈레반의 창립자 물라 모함마드 오마르의 젊고 경험이 없는 아들과 2008년 카불 호텔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과 관련해 미국이 지명수배한 시라주딘 하카니 사이를 중재했다고 소식통들은 당시 로이터에 말했다.
알카에다의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흐리는 탈레반의 지도자 취임 직후 온라인 음성 메시지를 통해 아쿤자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한 바 있다.
다른 탈레반 지도자들과는 달리 아쿤자다는 유엔 제재 명단에 올라 있지 않다. 하지만 탈레반 대변인에 따르면 그의 아들 압두르 라만은 지난 2017년 7월 헬만드에 있는 아프간 군 기지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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