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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국인 목사 탄생 120주년…헌신적 생애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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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신대 '아펜젤러 학술대회' 개최…1901년 감리교 김창식·김기범 목사 안수

"첫 목사 탄생후 한국 개신교 신학교육·목회자 양성 발전했다"

연합뉴스

감리교신학대 '제1회 아펜젤러 학술대회' 개최
(서울=연합뉴스) 감리교신학대는 6일 교내 웨슬리채플에서 '한국 최초 목사 안수 120주년 기념과 미래 목자상'을 주제로 '제1회 감리교신학대 개교기념 아펜젤러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021.9.6 [감리교신학대 제공. 재배포 및 DB금지] (끝)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첫 번째 목사로 기록된 김창식·김기범 목사 안수 120주년을 맞아 이들의 발자취와 의미를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감리교신학대는 6일 교내 웨슬리채플에서 '한국 최초 목사 안수 120주년 기념과 미래 목자상'을 주제로 '제1회 감리교신학대 개교기념 아펜젤러 학술대회'를 열었다.

교계에 따르면 1857년 황해도 수안에서 태어난 김창식은 한학을 배우며 농사일을 하다가 1887년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올링거의 집에 잡부로 취직했다.

그는 올링거 목사 내외의 인격과 생활 태도 등에 감화돼 기독교에 마음을 열었고, 이는 교리서를 공부하고 세례를 받는 일로 이어졌다. 이후 올링거가 미국으로 돌아가자 미국 감리교 의료선교사 홀의 개인비서가 돼 평양으로 갔고, 이곳에서 순회 전도를 시작했다. 평양선교 과정에서는 선교사를 도왔다는 이유로 배교를 강요당하며 매를 맞았으나 그 속에도 신앙을 지킨 일로 유명하다.

김창식은 1894년 청일전쟁 때 평양이 전쟁터가 됐으나 홀 선교사와 남아 피난을 가지 못한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던 것으로 기억된다.

1896년부터 4년간 정식 목회자 수업을 받았고, 선교활동도 적극적으로 펴며 교회 부흥에 앞장섰다. 1901년 5월 서울 상동교회에서 개최된 미국감리회 조선선교연회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한국인 최초 목사가 된 후 25년간 전국을 돌며 125개 교회를 개척했고, 48개 예배당을 건축했다. 낮은 자세로 활발한 선교를 폈던 그를 두고 주위 선교사들은 '조선의 바울'로 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29년 건강 악화로 작고했다.

1901년 김창식과 함께 첫 목사 안수를 받은 김기범은 1869년 황해도 해룡에서 태어났다. 그는 1889년 보부상과 함께 제물포를 찾은 뒤로 신앙인의 길을 택했다. 선교사를 도와 청년회를 만들고, 원산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목사 안수를 받은 뒤로는 존슨 목사를 도와 목회 활동을 하며 항일운동에도 가담했다.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1920년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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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감신대 은퇴교수는 이날 배포한 학술대회 발제문에서 120년 전 한국인 첫 목사 탄생을 두고 "한국 토착교회 목회자의 지도력에 대한 확증을 의미한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두 목사 안수를 계기로 한국 개신교회 목사 안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01년 미 감리회의 첫 번째 한국인 목사 안수는 한국 감리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회 전체의 신학교육과 목회자 양성과정을 한층 발전시킨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서영석 협성대 교수도 "한국인 목사가 안수받아 활동하며 한국 교계에 한인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한국의 기독교 선교가 상당히 활성화됐다"며 "우리는 두 목사님이 복음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쳤던 것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잊지 말고 세상으로 달려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목사란 누구인가'를 주제로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한국교회, 목회자의 역할을 짚어보는 시간도 마련됐다.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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