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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대표 선승 고우스님, 봉암사서 열반(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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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결핵 요양 차 절 찾았다가 출가 인연…'중도' 화두 참선으로 깨달음 구해

적명스님과 전국선원수좌회 창립…종립선원 봉암사 기틀 마련 평가

연합뉴스

고우스님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꼽히는 고우(古愚) 스님이 29일 열반했다. 법랍 60년, 세수 85세.

지병으로 치료를 받아온 고인은 이날 오후 3시 30분께 경북 문경의 봉암사에서 입적했다.

193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20대 중반 김천 수도암으로 출가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해 작가의 꿈을 키웠으나 군 복무 때 얻은 폐결핵이 인생을 바꿔놨다.

스님은 1961년 요양차 김천 수도암을 찾았다가 그길로 출가의 길에 들었다. 수도암에서 불교 공부의 재미에 푹 빠지면서 폐결핵 약을 버렸는데, 그 후로 병도 자연스레 나았다고 생전 스님은 회고한 바 있다.

고인은 1968년 문경 김용사에서 10여 명의 선승과 모여 결사도량이자 수선도량이었던 봉암사의 명맥을 되살리자는 뜻을 모았다. 성철스님이 이끌었던 첫 결사에 이어 두 번째 결사에 나선 것이다.

그해 당대 선지식을 모시고 봉암사의 선풍과 결사 정신을 되살린 그는 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 태고선원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스님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10·27 법난'으로 총무원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자 봉암사 탄성스님을 총무원장에 추대하고, 자신은 총무부장 소임을 맡아 10·27 법난을 수습했다. 종헌 개정 등 개혁조치를 한 뒤 석 달 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우스님은 2006년 경북 봉화에 금봉암을 창건해 주석하며, 선 법문의 청이 올 경우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다.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 추대,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大宗師) 품계를 받았다.

스님은 수행자로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했다.

그가 따랐던 불교의 근본은 중도(中道)였고, 선(禪)은 이를 체험 실천하는 것으로 봤다. 경전이나 교(敎)에서 말하는 '중생이 닦아 부처가 된다'는 말을 손가락 방편으로 여겼다.

자기 마음이 그대로 깨달아 완성된 '본래성불(本來成佛)'임에도 중생이라 착각을 하고 있으니, 그 착각 망상을 완전히 없애는 '확철대오(廓徹大悟)'가 바로 깨달음의 기준으로 봤다.

스님은 그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로 '화두 참선'을 확신했다.

이런 참선 수행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 1987년 도반 적명스님과 전국선원수좌회를 창립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고우스님은 한국 불교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일찍이 한국의 선풍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종단 차원에서 국제 선센터를 세워 간화선 인재를 양성하기를 발원했다.

참선과 함께 수행 여정을 이어온 스님도 80세가 되자 기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당뇨는 물론 폐, 심장 등에 병을 얻어 최근 봉화군 읍내 병원을 찾았다가 경주 동국대병원으로 옮겨져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수좌들은 스님의 건강이 악화하자 이날 봉암사 동방장실로 옮겨 예를 갖췄다.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스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스님의 장례는 봉암사에서 5일간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치러진다. 영결과 다비식은 9월 2일 오전 10시 30분에 있을 예정이다.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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