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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시리아 사태 반복할 수 없다"…200만 아프간 난민에 떠는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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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프간인의 처절한 탈출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아프간 난민 수용이 국제 사회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벌써부터 "2015년 시리아 사태 이후 또다시 대규모 망명자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철책 높이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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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19일(현지시간) 아프간 주민이 철조망이 쳐진 공항 담장 위의 미군에게 아기를 건네고 있다. 이날 영국군이 지키는 한 호텔에서는 “내 아기만이라도 살려 달라”며 철조망 너머 군인들에게 아기를 던지는 모습도 포착됐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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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아프간 난민 앞둔 유럽, '시리아 트라우마'



22일(현지시간) AP통신·뉴욕타임스(NYT)·BBC방송 등 주요 외신은 유럽연합(EU)이 아프간 난민의 대규모 이주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은 지난 2015년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13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몰려온 뒤, 극우와 포퓰리즘이 득세했고 이민자 수의 증감에 따라 정당 지지도가 오르내리는 등 정치·사회적 혼란에 휩싸인 바 있다. NYT는 "유럽 국가들은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이면 유럽의 정치 공감대가 무너지고 분열이 가속될 거란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상태"라고 말했다.

독일의 쥐트도이체차이퉁(SZ)에 따르면 탈레반 공세 속에 피난길에 오른 아프간 난민은 이미 20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아프간 서쪽 국경을 넘어 이란을 거쳐 터키 동부로 가거나, 파키스탄을 거쳐 이란 남동부로 건너가 터키로 가는 게 목표다. 이후 에게해를 통해 그리스나 이탈리아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최종 목표지는 유럽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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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아프간 사람들, 어디로 가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다음달 총선을 앞둔 독일과 내년 대선을 치러야 하는 프랑스는 아프간 난민 대책이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난민 포용'의 대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오는 9월 퇴임을 앞둔 가운데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아르민 라셰트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2015년은 절대 반복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독일은 유엔난민기구(UNHCR)와 이란·파키스탄 등 아프간 인접국에 재정과 물류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아프간 난민이 유럽까지 오지 않고 인접국에 머무를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유럽이 아프간 몰락의 결과를 전부 떠안을 수는 없다"면서 난민 수용에 난색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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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난민 수용 국가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아프간인의 유럽행(行)에 경로가 되는 국가들은 빗장부터 걸어 잠갔다. 그리스는 터키와의 국경에 40㎞ 길이의 장벽과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미칼리스 크리소코이디스 시민보호부 장관은 장벽이 세워진 에브로스 일대를 둘러보며 "예상 가능한 충격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우리 국경은 침범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는 이탈리아·스페인과 함께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중동 난민들의 관문이 되는 나라다.



미국 "제3국서 신원확인 거치고 들어와야"



주요 경로인 오스트리아 역시 아프간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혔다. 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아프간 인근 지역에 난민 센터를 지어야 한다"며 "아프간인이 오스트리아에 올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역시 "내 임기 중에 아프간 난민 추가 수용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에르도니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는 유럽의 난민 창고가 될 의무가 전혀 없다"고 아프간 난민 거절 의사를 밝혔다. 유엔난민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터키에서 아프간인 6000명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됐다. 터키와 그리스가 국경을 차단하면 아프간 난민들이 육로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갈 길목은 사실상 막히게 된다.

이미 아프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서 천신만고 끝에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아프간을 벗어난 이들의 앞날 역시 불투명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간 난민은 곧바로 미국에 발을 들일 수 없고, 20여국에 분산될 수속센터에서 신원 확인 절차를 마쳐야 한다"고 밝혔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미국과 동맹국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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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아프간 사람들, 어디로 가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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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난민 보호책 마련과 평화 정착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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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유럽은 미국과 함께 아프간 20년 전쟁의 당사자로, 장기적으로 봐서는 아프간 난민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며 "이미 이란·파키스탄 등 주변국이 난민 수용 포화상태인 것을 감안하면 빗장을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미국과 유럽국가는 아프간 주둔 당시 자국에 도움을 줬던 아프간 현지인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인도적 조치까지는 가능하겠지만, 자국민 반발을 고려해 대규모 난민 수용 결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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