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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남자 망치는 취미' 욕 먹더니…'이 맛' 모르고 차 사면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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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오디오를 품은 자동차 [사진 출처=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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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車]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

남자를 망치는 3대 장난감이자 취미다. 이 중 자동차와 오디오만 따로 떼어내 가산 탕진 2대 취미라고도 부른다.

제품 자체도 비싸지만 제대로 즐기기 위해 사양을 추가하고 튜닝하면 천만원 단위를 넘어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취미활동이 되기도 한다.

동병상련. 남자를 망치는 주범이라 욕먹던 자동차와 오디오가 한 몸이 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동차가 오디오를 품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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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운드 시스템 [사진 출처=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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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동차는 오디오와 찰떡궁합이다. 소음을 잡는 기술 덕분에 음악을 듣기 좋은 공간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집 내 평균 생활소음은 50데시벨(㏈) 수준이지만 일반적으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내부 소음은 70㏈ 정도다. 소음 차단 기술로 자동차 내부 소음은 도서관 수준인 40㏈ 수준으로 낮아졌다.

조용한 것만으로는 2% 부족하다. 자동차용 사운드 시스템은 홈 오디오 시스템보다 설계하기 어렵다. 집과 달리 온도 변화가 큰 데다 진동과 외부 소음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좁은 자동차 내부에서 소리가 난반사되는 데다 스피커를 움직일 수 있는 홈 오디오 시스템과 달리 스피커를 고정된 상태로 놔둬야 한다는 점도 좋은 음질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

'오감 만족'을 추구하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는 브랜드 전용 사운드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세계적인 오디오 회사들과 협업을 선택했다.

렉서스, '귀르가즘' 시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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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와 마크레빈슨 [사진 출처=렉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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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렉서스였다. '정숙성'에 일가견이 있던 렉서스는 자동차를 '달리는 콘서트홀'로 만들기 위해 세계적인 오디오 시스템 회사인 마크레빈슨에 러브콜을 보냈다.

렉서스는 1989년 설립 이후 2000년까지 우수한 오디오 브랜드로 널리 인정받던 일본의 나카미치 제품을 사용했다.

그러나 렉서스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우수한 오디오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최고의 오디오가 필요했다. 렉서스가 마크레빈슨에 손짓한 이유다. 마크레빈슨은 렉서스만을 위한 자동차 사운드 시스템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 뮤지션이자 마크레빈슨 사장이었던 필 무치오와 그의 팀은 렉서스 차 디자인 스케치부터 생산 단계에까지 관여했다. 최고의 궁합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렉서스가 2001년 SC 모델을 재검토하기 시작했을 즈음, 무치오는 리어 시트 패드를 다르게 디자인하면 음질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뒷좌석을 다시 만든 결과 오디오 음량이 5㏈ 높아졌다.

자동차를 달리는 콘서트홀로 만든 마크레빈슨과 렉서스 간 만남을 두고 오디오 업계는 물론 자동차 업계도 놀랐다. 전례 없는 완성도와 성능 때문이었다.

두 회사는 단지 생생한 음질을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력 소모와 열 발생은 물론 시스템 무게까지 최소화했다.

마크레빈슨과 렉서스가 자동차를 콘서트홀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자동차 회사와 오디오 회사 간 협업은 가속화됐다.

요즘엔 '자율주행'이 자동차 사운드 시스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할 일이 없어진 운전자에게 소리나 음악으로 쾌감을 추구하는 '귀르가즘'은 중요한 선택 포인트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시장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6%씩 성장해 약 15조5000억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만, 막귀도 득음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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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로직사운드 [사진 출처=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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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카 오디오 업계 거인은 삼성전자가 인수한 하만 인터내셔널이다. 하만 산하에는 마크레빈슨, 뱅앤올룹슨(자동차 부문), 베커, 인피니티, JBL, 렉시콘, 레벨 등의 브랜드가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출시한 G70, G80, G90, GV80에는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이 장착됐다. 기아차 플래그십 모델인 K9도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을 채택했다.

하만은 제네시스 차체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음향 시스템이 통합되도록 설계했다. 렉시콘 서라운드 기술의 정점인 '퀀텀로직 서라운드(QuantumLogic Surround·QLS)'와 손실된 디지털 음원을 복구하는 '클라리 파이(Clari-fi)' 기술도 제네시스 모든 차량에 적용됐다.

퀀텀로직 서라운드는 악기별 위치를 하나하나 구분해 콘서트홀에 와 있는 것 같은 서라운드 음향을 제공하는 하만의 독자 기술이다.

'관객 모드'를 선택하면 눈앞에서 공연이 펼쳐지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무대 모드'에서는 무대 위에서 연주자가 된 것 같은 서라운드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저가 이어폰에 길들여진 막귀도 '득음'하게 만들 수준이다.

클라리 파이 기술도 렉시콘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MP3, 스트리밍, DMB 등은 음원 압축 과정에서 음질이 손상된다. 소리를 키울 때 찢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클라리 파이 기술은 음원 정보를 실시간으로 재해석한 뒤 원음에 가까운 풍부하고 선명한 사운드로 만들어준다.

이탈리아 하이퍼포먼스 럭셔리 브랜드인 마세라티는 르반떼와 기블리 등에 하만에서 마세라티를 위해 개발한 바우어스 앤드 윌킨스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채택했다.

1280W 앰프와 17개 스피커로 구성된 마세라티 바우어스 앤드 윌킨스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에는 케블라(Kevlar) 소재의 미드레인지 드라이브 유닛, 항공기와 경주용 자동차 설계에 사용하는 최첨단 복합 소재인 로하셀(Rohacell) 베이스콘이 적용됐다.

케블라는 차량 내에서 미드레인지의 출력 왜곡을 줄이고, 넓은 사운드 스위트스폿을 제공한다. 로하셀은 경량성과 강성을 모두 갖춘 소재다. 르반떼 트로페오에도 바우어스 앤드 윌킨스 시스템이 적용됐다.

플래그십 세단인 BMW 7시리즈에는 바우어스 앤드 윌킨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BMW X7에는 하만카돈 시스템이 각각 장착됐다.

현대모비스, 막귀 탈출 프로젝트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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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사운드 시스템 개발 장면 [사진 출처=현대모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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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자동차 사운드 시스템을 주도하는 곳은 현대모비스다. 현대모비스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 특성과 실제 도로 주행 상황 등에 걸맞은 최적화된 오디오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국내 최대 규모의 사운드 전용 시험실을 갖추고 기술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이를 통해 프리미엄 오디오의 상징과도 같은 스피커와 앰프 설계 역량을 확보했다. 해외 오디오 전문업체들과 협업해 200개 이상 차량 모델에 오디오 시스템을 공급한 풍부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오디오 전문업체를 찾다가 영국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인 메리디안과 손을 잡았다.

메리디안이 40여 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이파이 오디오에 특화된 다수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시스템 설계 노하우에 메리디안이 보유한 오디오 기술의 시너지 효과를 추구했다.

현대모비스는 메리디안과 함께 2년간 공동 개발한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기아 K8에 처음 탑재했다.

K8 출시 전 메리디안 소속 마에스트로와 엔지니어를 국내로 대거 초청해 신차 개발자들과 함께 차량에 최적화된 정교한 튜닝을 진행했다.

프리미엄 사운드의 특성을 반영한 균형 잡힌 베이스, 왜곡 없는 사운드 재생능력,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 섬세한 표현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K8에는 스피커가 총 14개 들어갔다. 우퍼 출력을 높여 저음 재생도 강화했다. 실시간 주행 속도 변화에도 음량과 음질을 보정하고 운전자가 원하는 스트레오 음향 공간을 구성하는 기능도 갖췄다.

현대모비스는 메리디안과 함께 전 세계 프리미엄 오디오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기아 K8을 시작으로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이 내놓는 전기차, 럭셔리카, SUV 등 다양한 차종에 메리디안과 협업한 프리미엄 사운드를 장착한다.

또 현대모비스는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외에도 독자적인 오디오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운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스피커 물량 공세에서 스피커 없는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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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없는 사운드 시스템 [사진 출처=콘티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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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시되는 자동차용 사운드 시스템은 홈 오디오 시스템 뺨친다. 더 좋은 소리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스피커 개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스피커는 오디오 시스템 전기 소리를 음향으로 전환해주는 장치다. 스피커가 많다는 게 반드시 좋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스피커가 많으면 음향이 더 풍성해지고 세밀해진다.

스피커 개수는 10여 년 전만 해도 4개면 충분하다고 여겼지만 프리미엄 자동차에는 8개는 기본이고 20개가 넘는 스피커를 적용하기도 한다.

스피커 개수가 많아지는 한편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는 카 오디오 시스템도 등장했다. 기술 기업 콘티넨탈과 오디오 전문기업 젠하이저는 스피커 없는 카 오디오 시스템을 선보였다.

스피커 없는 카 오디오 시스템에는 기존 스피커 기술을 배제하고 차량 내 특정 표면을 자극해 사운드를 생성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콘티넨탈 액추에이티드 사운드 시스템은 목재 몸통을 공명실로 이용하는 클래식 현악기에서 영감을 얻은 기술이다. 차량 내부 표면을 자극해 소리를 만들며 콘서트홀에 있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음향을 제공한다.

액추에이터는 A필러 트림, 도어 트림, 루프 라이닝(roof lining), 리어 셸프(rear shelf) 같은 부품에 진동을 일으켜 각기 다른 주파수 범위에서 소리를 발산한다.

스피커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소재 표면을 이용하기 때문에 기존 오디오 시스템보다 무게와 공간을 75~90% 절약할 수 있다.

액추에이티드 사운드를 이용하면 차량 내 표면이 스피커 진동판처럼 진동하므로 부품을 장착할 필요가 없다.

실내에서 특정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카 오디오 기술 덕분에 자동차 제조사는 더 이상 스피커 배치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무게와 부피를 줄여야 하는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에 적합하다.

탑승자 개개인 기분을 고려해 맞춤 음향을 제공해주는 기술도 등장했다. 자동차 음향·영상·커넥티드카 업체인 하만 인터내셔널은 무드 기술의 결정체인 '무드스케이프'를 개발했다.

무드스케이프는 차량 탑승자에게 개인 맞춤형 엔터테인먼트, 안락함, 편안함을 제공하는 UX(사용자경험) 솔루션이다.

무드스케이프는 탑승자의 위치, 일정, 생체에너지를 분석한 뒤 탑승자의 기분에 맞춰 적절한 음량으로 오디오 시스템을 작동한다.

자동차 사운드 시스템은 자율주행 시대에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자율주행차는 이동수단을 넘어 오감만족 복합 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도 자동차의 진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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