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학순 할머니 공개증언 30주년 기념 학술대회
전문가들 "역사부정주의 발호…할머니 위해 기억 이어가야"
'김학순 공개증언 30주년 국제학술대회' |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나는 부끄럽지 않다. 이 순간을 내 평생 기다려왔다."
1991년 8월 14일 한국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로서 처음 피해 사실을 공개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증언 3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13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열렸다.
세계 각지에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치유를 위해 활동해온 참석자들은 김 할머니가 낸 용기를 회고하면서 역사 부정에 맞서 피해자들의 기억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김학순 공개증언 30주년 |
◇ "김학순 증언, 세계 성폭력 여성 피해 경험 공유의 계기"
엘리자베스 손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김학순 할머니는 전 세계 여러 세대의 여성들이 본인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며 "살아있는 증인으로서 세상에 당신의 전쟁 경험을 전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양현아 서울대 교수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힘없고 이름 없었던 지역의 기층민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아시아, 세계의 깊은 침묵이 깨졌던 계기"라고 평가했다.
김 할머니가 일으킨 파장으로 한옥선(1919∼2009), 안법순(1925∼2003), 김화선(1926∼2012), 최갑순(1919∼2012) 등 다른 피해자들 역시 고통스럽게 자신의 아픔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도 네덜란드의 얀 루프 오헨 할머니(1923∼2019) 할머니 등이 이런 증언을 보고 용기를 냈다.
이런 피해 생존자 100여명의 목소리는 1993년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나온 총 8권의 증언집 시리즈에 담겼다. 지역 단체들이 출간한 증언집을 더하면 기록은 모두 17권에 이른다.
나눔의집 위안부 피해 할머니 흉상 |
◇ 김학순과 함께해온 日 활동가들 "일본 돌아보게 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일본 사회도 술렁였다. 김 할머니는 1991년 12월 일본 도쿄와 간사이(關西) 각지에서 자신의 증언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회에 참석했고,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양징자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 공동대표는 이런 집회가 이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던 일본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운동의 후속세대를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당장 김 할머니는 일본 집회에서 "어째서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기억이 진실이 아니라거나 '일본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일본 총리에게서까지 나왔다.
양 공동대표는 "당시 일본 사회는 그녀들(피해자들)이 50년 동안 사실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왔다는 사실에 대해 상상력을 갖지 못했다"며 "운동을 위해 일어선 여성들조차 한국의 운동으로부터의 물음이 있었기에 비로소 우리들이 놓쳐 온 일본의 과거 죄악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필요성에 눈 뜨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아사히신문 기자이던 우에무라 다카시 '주간금요일' 발행인은 1991년 김 할머니의 사연을 일본에 처음 보도한 일로 일본 우익들로부터 극심한 공격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싸워왔다고 술회했다.
그는 "김학순 씨가 일본 변호인단에 호소한 세 가지 바람인 일본 정부의 사과, 젊은 세대로의 기억 계승, 비석 건립이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기억 계승에 대한 공격을 일본 정부가 저지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램지어 사태 (CG) |
◇ "日 '역사전쟁'은 진행 중…기억 지속하는 것은 모두의 의무"
전문가들은 최근 '램지어 사태' 등으로 대표되는 역사부정주의에 대한 경계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야마구치 도모미 미국 몬타나주립대 교수는 현재의 '역사전쟁'을 "일본 우익이 '중국·한국이 일본을 깎아내리기 위해 싸움을 걸고 있으며 그 주전장(주된 싸움터)은 미국'이라는 인식에 근거한 일본군과 정부의 전쟁 책임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라고 정의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이런 역사 부정이 왜곡된 통계 수치를 나열하면서 학문적 모양새를 취하거나 피해자들의 증언을 자의적으로 절취하는 방식, 궤변임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확신에 찬 지속적인 주장을 하는 방식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일부 지식인까지 가세한 '램지어 사태'는 이를 요약해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오늘 이 모든 여성이 거짓말쟁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은 일본의 현 정부"라며 "김학순은 20세기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한 명으로 남아 있고 그의 몸에 각인된 공포를 영원히 끝내기 위해 유산을 21세기에 지속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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