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여파로 미국 내 휘발유 소매가격이 3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11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주유소에서 일반 휘발유가 갤런당 3.0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신화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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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이 11일(현지시간) 국제 유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 산유국에 추가적인 증산을 요청했다. 또 국제 원유값 인하에도 불구하고 거의 가격 변동이 없는 미국 휘발유 유통 시장 조사에도 착수해 불공정 행위를 파헤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에너지발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고자 국내외에서 유가와의 전면전에 나서는 양상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고유가는 세계 경제 회복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OPEC+의 증산 계획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석유 감산분을 상쇄하지 못하는 등 세계 경제 회복 국면에서 충분하지 않다"면서 "OPEC+에서 경제 회복에 더 많이 공헌해야 한다"며 추가 증산을 촉구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같은 기존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을 포함한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8월부터 내년까지 하루 40만배럴씩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산유국들이 담합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원유 생산을 늘려가면서 가격 인하를 촉진할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OPEC+ 비회원국인 미국이 산유국을 향해 민감한 증산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은 OPEC 당사자가 아니지만 공공과 민간에서 국가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 국제 파트너들과 항상 이야기해왔다"며 "(원유) 가격 설정에서 경쟁력 있는 시장의 중요성에 대해 OPEC 회원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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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요 대비 공급 부족으로 인해 원유 가격은 여전히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 국제 유가는 올해 들어 약 40% 올라 배럴당 7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작년 말 배럴당 48.52달러에서 이달 11일 기준 69.25달러로 뛰었다.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날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게 전격적으로 서한을 보내 국제 유가와 주유소 휘발유값의 괴리 문제를 지적하고 잠재적인 불법행위와 반경쟁 조사를 주문했다. 디스 위원장은 '비대칭 현상(asymmetrical phenomenon)' 문제를 꼬집었다. 국제 유가가 오를 때 휘발유값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국제 유가가 하락하더라도 휘발유값은 꿈쩍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 성격인 FTC는 앞으로 휘발유 유통 시장 현장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핵심 외교 참모인 설리번 보좌관과 경제 참모인 디스 위원장이 같은 날 동시에 기름값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렸고 반독점 규제 컨트롤타워인 칸 위원장까지 화력 지원에 나서는 등 사실상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돌입한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발표된 7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5.4% 올라 석 달 연속 5%대 상승률을 기록한 가운데 유독 휘발유값이 고공 행진했다. 최근 1년 전과 비교하면 휘발유값은 41.8% 치솟았다. 또 미국자동차협회 조사에 따르면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3.18달러로 작년에 비해 1달러 이상 올랐다. 12일(현지시간) 발표한 미국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이 7.8%에 달했다. 2010년 11월 집계 시작 이후 최고치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도 물가 안정에 쏠리고 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가운데 연내 총 4조5000억달러(약 500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인프라스트럭처 예산을 처리하려는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는 경기 회복을 위해 시중에 돈을 풀더라도 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석유 회사 오일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주유소에서 넣는 휘발유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점은 경쟁 시장에서 기대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OPEC 국가들이 코로나 시기에 감산했던 부분을 세계 경제 회복에 따라 되돌려서 휘발유 소비자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바이든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악관이 산유국들에 증산을 요구했다는 소식에도 국제 유가는 상승 마감했다. 1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WTI 선물가격은 전날보다 1.4% 오른 배럴당 69.2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미국 원유 재고량이 감소한 탓이다. 전날 2.7% 오른 데 이어 다시 1.4% 이상 상승하면서 배럴당 70달러 선 직전에 도달했다.
[워싱턴 = 강계만 특파원 / 서울 =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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