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폭발참사’ 1년 레바논, 정치 혼란·경제 위기 후폭풍으로 몸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4일 시민들 항의 시위서 84명 다쳐

정치권, 붕괴된 내각도 1년째 못꾸려

“150년새 최악 경제위기 될수도” 우려


한겨레

4일 레바논 베이루트항의 질산암모늄 폭발 참사 현장 근처에서 참사 1주기를 맞아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 4일 오후(현지시각)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오후 6시가 넘어가자, 꼭 1년 전 이 시간에 폭발 참사로 사망한 200여 명의 명복을 빌며 잠시 침묵했다.

<알자지라> 등 보도를 보면, 이날 침묵 행사 뒤 시민들은 베이루트 시내의 레바논 의회로 몰려가 “국민은 정권의 몰락을 원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의회에 돌과 유리병을 던지는 등 강하게 항의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경찰은 이들에게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며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84명의 시민들이 다쳤다고 레바논 적십자사가 밝혔다.

폭발 참사 1년이 지났지만 레바논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거주 지역 근처의 부두 창고에 폭발물과 다름없는 질산암모늄 2천여톤이 수년째 보관돼 왔고, 결국 폭발해 200명 이상이 숨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4일 레바논 베이루트항의 질산암모늄 폭발 참사 1주기를 맞아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치권의 혼란도 지속되고 있다. 폭발 참사 엿새 만인 지난해 8월10일 하산 디압 총리가 내각 총사퇴를 발표했지만, 레바논 의회는 이후 세 번째 총리 지명자가 나오도록 내각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말 공개된 세 번째 총리 지명자는 2011~2013년 총리를 지낸 억만장자 사업가 나지브 미카티로, 개혁 정부를 원하는 시민들의 바람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런 움직임은 정치 체제의 전면 개편을 원하는 많은 레바논 시민들을 화나게 했다”고 전했다.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도 지지부진하다. 레바논 정부는 참사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질산암모늄의 소유주조차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조사를 보면, 2013년 조지아에서 질산암모늄 2750톤을 싣고 출발해 모잠비크로 향하던 낡은 화물선은 중간에 레바논에 들렀고, 항구와의 송사로 발이 묶였다. 5년 뒤에는 질산암모늄을 항구에 내려놓은 뒤 낡은 배가 침몰했고, 도중에 질산암모늄 판매자가 폐업하고 주문한 곳은 아직 물건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소유관계가 애매해졌다.

부주의한 보관에 대한 책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레바논 사법 당국은 실무자급 20여명을 체포했지만 고위 관료들은 기소하지 않았다. 두 달 여 뒤인 지난해 말에야 사법 당국은 폭발 참사와 관련해 디압 임시 총리와 전직 장관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지만 오히려 올해 2월 조사를 이끄는 파디 사완 판사가 재판에서 배제됐다. “그의 집이 폭발로 무너져 공정한 조사를 할 수 없다”고 기소된 장관들이 항의했기 때문이다. 이후 새로운 판사가 임명됐지만, 재판은 의원들의 방해로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다.

한겨레

4일 레바논 베이루트항의 질산암모늄 폭발 참사 1주년을 맞은 현장의 모습.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폭발 참사 전인 2019년 금융위기로 경제난을 겪었던 레바논은 참사 이후 훨씬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레바논 공식 환율은 1달러당 1507.5 레바논 파운드이지만, 지난달 중순 암시장에서는 1달러당 2만 레바논 파운드를 넘었다. 참사 전인 지난해 6월에는 1달러당 6000 레바논 파운드였다. 1년새 가치가 3배 이상 폭락한 것이다. 월 최저임금도 2년 전 450달러에서 최근 35달러까지 떨어졌고, 정전 사태가 하루 20시간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계은행은 레바논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가 150년 이래 세계가 겪은 3개의 최악의 경제난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난으로 인한 생필품과 의약품 부족은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다.

유엔은 현재 레바논에 식품, 교육, 보건 등을 위해 3억5700만달러(4000여억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폭발 참사 1주기를 맞아 1억유로(1350억원) 상당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도 인도적 지원으로 1억달러(1150억원)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한겨레 서포터즈 벗이 궁금하시다면? ‘클릭’‘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