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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쿠오모 주지사 성추행 사건, 美 독립수사팀이 5개월간 파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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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고위공직자 성추행 처리하는 법]

179명 조사, 수만건의 문건 확인 “No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피해 여성 11명’ 보고서로 밝혀… 절친 바이든 대통령도 사퇴 요구

조선일보

성추행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주지사가 3일(현지시간) 뉴욕 집무실에서 사전 녹화된 영상을 통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이날 쿠오모 지사가 전·현직 보좌관을 성추행하고, 추행 사실을 공개한 직원에 대해 보복 조처를 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쿠오모 지사는 부적절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이 같은 검찰 조사 결과를 반박했다. [뉴욕 주지사실 제공 영상 캡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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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의 스타 정치인이자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인 앤드루 쿠오모(63) 뉴욕주지사의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 가해자 측이 개입할 수 없는 독립 수사팀이 5개월 가까이 철저히 수사한 결과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일제히 그의 사퇴를 요구하고, 뉴욕주의회가 탄핵 조사에 속도를 내면서 쿠오모의 정치 생명은 위기를 맞았다.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3일(현지 시각) 11년째 3선(選) 뉴욕주지사로 재직 중인 쿠오모가 수년간 전·현직 보좌관 9명을 포함한 여성 11명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165쪽짜리 보고서를 공개했다. 앞서 지난 2월부터 린지 보이란(36) 전 뉴욕주 경제개발 특별고문, 샬럿 베넷(25) 전 비서 등 7명의 여성이 쿠오모가 “한 남자하고만 자느냐” “나이 많은 남자와 사귈 수 있느냐” “옷벗기 게임을 하자”는 등 부적절한 언급을 하고, 민감한 부위를 만지거나 키스하는 등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했다고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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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 검찰이 외부의 독립 수사팀에 의뢰한 조사, 작성한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의 성폭력 조사 보고서. 5개월간 179명을 인터뷰하고 수만 건의 문건 등 물증을 확보, 의혹과 주장에 불과했던 폭로를 사실로 입증했다. /뉴욕주검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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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이런 의혹들이 179명의 증인·참고인 증언과 수만 건의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수시로 쿠오모가 몸을 더듬은 20대 여성 경관 등 새로운 피해자도 나왔다. 보고서는 “감히 노(no)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 근로자들은 주지사의 성희롱과 공포 정치 양극단을 오가며 일했다”고 적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쿠오모가 한 보좌관을 껴안은 뒤 블라우스 안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움켜쥐었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정황 등이 제시됐다고 전했다. 이 보좌관은 “그(쿠오모)가 내 가슴을 움켜쥐어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당초 쿠오모 주지사는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겠다고 했지만, 민주당이 장악한 뉴욕 주의회가 “독립적 조사가 보장돼야 한다”고 반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뉴욕주 검찰은 지난 3월 공직자 범죄 수사로 유명한 한국계 준 김 전 뉴욕 남부연방지검장 대행과 노동법 전문 여성 변호사인 앤 클락을 선임해 철저한 보안 속에서 조사가 진행되도록 했다. 김 전 대행은 2018년 쿠오모 주지사의 최측근을 권력형 비리로 기소, ‘스타 검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달 쿠오모를 소환해 자신이 직접 11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이런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쿠오모 주지사와 그의 지지자들이 조사에 개입하거나 피해자의 신상을 털고 공격하는 ‘2차 가해’는 일어날 수 없었다. 쿠오모는 첫 폭로자인 린지 보이란의 근무 태만과 ‘불순한 정치적 동기’를 지적하는 내용의 신문 기고를 하려 했으나 측근들 만류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쿠오모는 지난해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후, 뉴욕의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선 주자로 꼽혔다. 아버지 마리오 쿠오모는 3선의 뉴욕주지사를 지냈고, 동생은 CNN 유명 앵커인 크리스 쿠오모다.

뉴욕주 검찰은 “쿠오모의 성추행은 위법 사안이지만,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아야 하는) 민사 소송 성격이 강해 일단 형사 기소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뉴욕 주도인 알바니 카운티 검찰은 별도 수사를 통해 쿠오모를 기소할 방침이다. 쿠오모의 거취 판단은 정치권으로 공이 넘어갔다.

쿠오모 주지사는 스캔들 직전 바이든 정부 초대 법무장관 물망에 오를 정도로 바이든 대통령과 친한 사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검찰 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그의 사임을 요구했다. “나는 ‘조사 결과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쿠오모 주지사가 사임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오늘 난 그가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고위 공직자의 성범죄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민주당과 여성계의 강경한 기류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언론은 분석했다.

민주당을 이끄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뉴욕을 지역구로 하는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쿠오모 사퇴를 요구했다. 뉴욕 인근 뉴저지와 코네티컷, 펜실베이니아의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도 쿠오모 사퇴를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이에 대해 쿠오모 주지사는 검찰 조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조사 보고서는 정치적으로 편향돼있고 사실과 다르다. 난 모든 직원에게 친밀감을 표현할 뿐, 부적절한 접촉은 하지 않았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하지만, 칼 헤스티 뉴욕주 하원의장은 “쿠오모 주지사 탄핵 심리 절차를 가속화하겠다”면서 9~10월에 의회의 탄핵 조사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CNN에 따르면 현재 쿠오모 탄핵에 찬성하는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을 합하면 과반을 넘어 탄핵안이 발의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주지사 직무는 바로 정지된다. 이어 탄핵 심판에서 상원의원 62명과 주대법관 7명 중 3분의 2인 46명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이 성립된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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