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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혐오 피해 내려간 지하에서 만난, 견디지 못할 습기와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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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온도④ 폐기물처리업체 노동자

“악취 민원에 쪽문도 못 열게 해”

두꺼운 작업복에 팔토시·장갑…

환기 안돼 여름엔 최악의 고통


한겨레

선별실에 들어온 재활용품을 손으로 분류하는 모습. 소형 에어컨과 선풍기로는 더위를 식히긴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ㄱ업체 노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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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시설’이라는 딱지를 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지하로 내려간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악취를 참아내며 하루 약 40t씩 쏟아져 내리는 재활용품과 전쟁을 치른다. 창문 하나 없이 땅밑에서 일하는 이들에겐 무더위와 높은 습도를 견뎌야 하는 여름이 최악의 계절이다.

지난 30일 <한겨레>는 서울 외곽의 ㄱ폐기물 처리업체를 찾아 직원들을 만났다. 폭염으로 곳곳의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이들이 일하는 땅 아래 노동 현장은 평소 떠올리기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1만4000㎡(약 4200평)의 대규모 재활용 선별 작업장은 지하로 들어간 그 깊이 만큼,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한 역한 공기와 먼지가 둘러싸고 있다.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선풍기 바람이 채 닿지 않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에서 힘겹게 재활용품을 솎아낸다. 각종 플라스틱과 종이, 비닐, 캔, 유리, 스티로폼 등을 분류하는 재활용 선별 업무는 대부분 여성 노동자들의 몫이다.

다른 계절도 고되긴 마찬가지이지만, 일하는 이들에게 여름 노동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악취와 높은 습도다. 재활용 선별이 주된 업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가 선별소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올라오는데, 여기에서 생기는 악취와 유해물질을 밀폐된 지하에서 밖으로 내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3년째 일하는 이아무개(49)씨는 “악취가 외부로 빠져나가면 주민들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어떤 날엔 냄새 때문에 밖으로 향하는 쪽문도 못 열게 해서 이 공기를 고스란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야외 폐기물 수거장과 달리 지하 처리장 환경을 개선하려면 외부 공기를 안으로 빨아들이는 흡기와 내부 공기를 내보내는 배기가 고루 이뤄져야 하는데, 악취 문제로 환기 자체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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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을 위해 사전에 부피가 큰 비닐, 철재류 등을 분류하는 모습. 재활용 대상이 될 수 없는 음식물쓰레기와 일반쓰레기가 아무렇게나 섞여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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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은 이런 지하 현장의 노동강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두꺼운 작업복 두른 채 종일 허리를 숙이고 움직이다 보면 선별소 안에 놓인 소형 에어컨과 벽걸이 선풍기로는 더위를 식힐 수 없다. 선별장에서 2년을 일한 여성 ㄴ(60)씨는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쓴 채 (작업복 위에) 비닐 앞치마를 쓰고 토시를 껴야 한다. 얇은 걸 끼면 쓰레기 때문에 팔이 금방 가려워져서 두꺼운 걸 (쓴다). 장갑도 일반 면장갑에 코팅 장갑 두 개를 겹쳐 껴야 유리나 칼에 찔리지 않는다”며 “땀 때문에 마스크부터 속옷까지 온몸에 딱 붙어 떨어지질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여름의 열기만큼이나 노동자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게 바로 높은 습도다. 습도가 높을수록 곰팡이 등 세균 번식이 잘 되는데, 코로나19로 배달 음식이 폭증하면서 플라스틱 용기에 딸려온 음식물까지 처리하다 보니 벌레떼와 쥐가 들끓기 십상이다. ㄴ씨는 “선별을 하다 보면 이물질이 눈에 튀어 보호안경을 쓰기도 하는데, 마스크까지 쓰면 습기가 차서 그것도 빼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 30일 오후 2시 20분 기준으로 선별장 내부를 측정해 보니 온도는 28.8도를 가리켰지만, 이곳 노동자들은 높은 습도(68%)와 두꺼운 복장 탓에 체감 온도가 훨씬 높다고 털어놨다. ㄴ씨와 한 공간에서 일하는 ㄷ(37)씨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목에 난 땀에 유리 조각이 들러붙었는지 퇴근 후에 옷을 갈아입다 보면 유리 조각이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라며 “탈진해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다. 같이 있던 언니(동료)들이 휴게실로 내가 올라오질 않는 걸 보고 119 신고를 해 줬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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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전혀 설치되지 않은 작업장의 실내 온도는 지난 30일 오후 4시21분 기준 31.8도, 습도는 65%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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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열악한 환경이지만 정작 이곳 선별소 노동자들이 배치되길 꺼리는 곳은 따로 있었다. 기계가 자동으로 페트병 등을 선별하는 광학선별기실이다. 애초 기능대로라면 사람이 개입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재활용품보다 더 많이 유입되는 일반쓰레기와 오물들을 기계가 걸러내지 못하는 탓에 결국 일반 선별실처럼 사람이 나서서 재분류를 해야 한다. 이곳에선 에어컨도 휴식도 필요 없는 기계의 분류 속도에 사람이 맞춰 일해야 해서 노동강도가 더 세다. 한여름 이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50대 여성 ㄹ씨는 “에어컨도 없는 좁은 곳에서 두 명이 일하려니 여름이 너무 힘들다. 물건도 한꺼번에 빠르게 내려오니 숨이 턱 막힐 정도인데, 그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써야 하니 마스크가 새까매지는 건 일상”이라고 했다.

광학선별기가 위치한 작업장은 고온에 각종 기계가 뿜어대는 먼지와 소음도 심각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건 귀마개와 마스크뿐이다. 선별기 근처 재활용품을 압축하는 구역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이곳엔 에어컨 자체가 없고,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도 뜨거운 바람이 나오니 효과가 없다. 10분 쉬는 시간에 바람을 쐬는 것 말고는 더위를 피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날 오후 4시 20분께 이곳의 온도는 31.8도, 습도는 65%였다. 이들에게 에어컨 바람은 식사시간(1시간)과 50분 노동 뒤 주어지는 10분의 휴식 시간에만 허락된다.

사실상 주 6일 근무체제로 돌아가는 이 업체 직원들은 대다수가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이다. 약 8시간을 지하에 있다가 비로소 바깥으로 나오는데, 퇴근길엔 대부분 칼칼한 목과 어깨,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ㄹ씨는 “이 일을 시작한 뒤로 어깨 통증 치료를 받게 됐다. 목이 아프다는 사람도 많지만 병원에 가려면 또 반차를 써야 하니까…”라며 말을 흐렸다. 아이를 키우는 ㄷ씨도 “여기엔 온몸에 파스 안 붙인 사람이 없다. 내 경우엔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집에 가면 다시 살림과 육아가 기다린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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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재활용 반입장에 수거된 각종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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