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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K팝이 이토록 퀴어한 이유는···‘퀴어돌로지’ 저자가 말하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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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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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이달의 소녀 츄의 ‘하트 어택(Heart Attack)’의 한 장면. 한 소녀가 다른 소녀를 짝사랑하는 듯한 뮤직비디오 내용 때문에 퀴어 퍼레이드 ‘프라이드 송’ 설문 조사에서 4위에 오를 정도로 퀴어 팬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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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K팝 ‘덕질’에 빠져본 이라면, K팝 세계를 채운 고농도의 ‘퀴어함(Queerness)’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H.O.T.와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 태동기부터 동성 멤버 간 애정관계를 다룬 ‘팬픽’은 팬덤을 결속하고 이끈 핵심 동력원이었다. 퀴어(성소수자) 팬덤은 팬픽의 가장 적극적인 생산자이자 소비자였다. 빌보드 차트 ‘씹어먹는’ K팝의 서구권 인기 중심에는 비백인 퀴어 팬덤의 탄탄한 지지가 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 퀴어들이 꼽은 ‘프라이드 송’ 투표에서는 아이돌 K팝이 차트를 장악하며, 퀴어 퍼레이드에선 아이돌의 이름을 딴 퀴어 팬덤의 깃발이 나부낀다.

K팝은 언제나 퀴어 팬덤을 몰고 다녔고, 그 원인이자 결과로 K팝은 기존의 젠더 편견에서 벗어나는 ‘퀴어함’을 재현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K팝과 퀴어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처럼 여겨진다. ‘이토록 퀴어한 세계’로서의 K팝을 다각도로 들여다보는 책 <퀴어돌로지>의 출간이 반가운 이유다. 지난해 세 차례 열린 세미나 ‘2020 퀴어돌로지’에 모인 저자 11명이 퀴어 문화와 K팝의 접점을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해냈다. 최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이 책의 저자·기획자인 사회학 연구자 연혜원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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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퀴어돌로지>의 저자이자 기획자 연혜원 연구자.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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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팬의 힘이죠. K팝은 현존하는 어떤 대중문화보다도 가장 두꺼운 저연령 여성 팬덤을 지녔고, 이들이 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요.”

SOGI 법정책연구회 발표를 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지수는 100% 기준으로 8.08%에 불과하다. 한국 주류 문화는 여전히 퀴어를 차별하고 혐오하는데, K팝이 이토록 퀴어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이돌 멤버 간의 서사와 세계관이 중요한 K팝은 일종의 ‘역할놀이’인데, 여성 팬들이 소비의 주도권을 갖다보니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성 역할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캐릭터와 해석이 나올 수밖에요. 팬들의 요구에 맞춰 멋지면서도 무해하고 또 귀여운, 마초성이 소거된 남성 아이돌이 나오면서, 퀴어들은 다른 대중문화보다 손쉽게 K팝의 서사에 자신을 투영하고 롤모델을 찾을 수 있게 된 거죠.”

저연령 여성 팬들이 주도하는 K팝 특유의 ‘역할놀이’가 이성애 규범적인 ‘정상성’ 너머의 세계를 살아가는 퀴어들에게 대안적 서사로서 기능했다. 연씨는 “적지 않은 퀴어들이 팬픽을 통해 퀴어로서 정체화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이성애 중심적 서사로만 채워졌다는 뜻이다. “영화, 드라마를 보면 동성 간의 친밀함을 재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제한적이에요. 기존의 성별 고정관념에 충실하죠. 하지만 팬픽은 동성 간 사랑뿐만 아니라 대안가족처럼 기존 미디어에서는 재현된 적 없는 다양한 모습의 관계성이 그려지거든요. K팝은 무성애자를 포함해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퀴어들이 대안적인 관계를 생각해내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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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퍼레이드 ‘프라이드 송’을 묻는 설문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그룹 NCT U의 ‘베이비 돈트 스탑(Baby Don’t Stop)‘.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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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게 ‘퀴어 서사’의 가능성을 담지한 K팝. 산업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오는 퀴어 팬덤에 어떻게 응답했을까. “K팝이 퀴어해지기 시작한 계기 중 하나가 팝 가수 레이디 가가의 등장이죠. 2000년대 중후반, 레이디 가가를 필두로 퀴어 인권을 주장하는 가수들이 서구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K팝 산업 역시 그 트렌드를 따라가 지드래곤으로 대표되는 ‘젠더리스’ 유행을 만들어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팝에서 유행하는 퀴어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 패션만 가져왔다는 거죠. 전형적인 헤테로 워싱(퀴어 요소를 지움)이에요.”

K팝은 퀴어 문화 팬덤의 영향력 속에 성장하고 변화하면서도, 끊임없이 그 영향의 흔적을 모른 체하며 나아가고 있다.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굉장히 많은 퀴어 예술가들이 K팝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존재는 계속 지워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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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을지로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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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변화는 있다. K팝 아이돌 사이에서도 퀴어 팬덤의 존재를 인지하고 퀴어 인권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그룹 소녀시대의 티파니는 “앞으로도 LGBTQ+(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약어) 커뮤니티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여러분들 곁에 서겠다”고 공개 발언했다. 연씨는 “산업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관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발언하는 아티스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최근 K팝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면서 “산업의 보수성과 별개로 앞으로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커밍아웃을 하고, 성소수자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K팝 아티스트들이 점점 더 빠르게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퀴어돌로지> 책 소개대로 K팝은 “혐오와 연대가 각축하고, 전복과 교란이 벌어지는” 괴상한 산업이다. K팝 세계에선 인간에 대한 물화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동시에 인권과 연대의 목소리가 샘솟는다. 연씨는 “끊임없이 오역하라”는 책 속의 문장을 ‘더 나은’ K팝을 바라는 이들에게 지향점으로 제시한다. “너무 거대한 산업에 포섭돼 있다보니, 아이돌도 팬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힘들죠. 이런 벽을 깰 수 있는 힘은 결국 팬덤에 있어요. K팝 생산자의 의도가 무엇이든 퀴어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콘텐츠와 서사를 해석하고, 산업에 원하는 바를 끊임없이 요구하다보면 산업의 일부가 아닌 연대의 동료로서 팬과 아이돌이 만나는 날이 늦더라도 언젠가는 꼭 온다고 생각합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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