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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쥴리 벽화’ 파란 눈 그녀의 정체… 5년 전 그려진 호주 벽화의 팝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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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 건물에 그려진 쥴리 벽화(왼쪽)와 2016년 7월 호주에 그려졌던 테일러 스위프트 벽화. /김명진 기자, lushsux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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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금발에 파란색 눈동자. 지난달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 건물 외벽에 그려진 ‘쥴리 벽화’ 속 여성은 어딘가 낯설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인 김건희 씨를 비방했다는 논란을 낳았지만 왜인지 전형적인 백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쥴리 벽화와 똑 닮은 벽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16년 호주 멜버른 한 도시에 그려진 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얼굴이다. 이 벽화에는 당시 미국 연예계를 뒤흔들었던 ‘테일러 스네이크(snake) 사건’이 얽혀있다.

◇“쥴리의 꿈” 써놓고 금발 여성…테일러 스위프트 본떴나

쥴리 벽화에는 한 여성의 얼굴이 커다랗게 담겨있다. 그리고는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이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빨간색 하트에 칼이 꽂혀 있고 그 위에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글귀가 적힌 그림도 있다. ‘2000 아무개 의사, 2005 조 회장, 2006 아무개 평검사, 2006 양검사, 2007 BM 대표, 2008 김 아나운서, 2009 윤서방 검사’라는 문구도 더해졌다.

‘쥴리’는 김씨 관련 루머에서 그를 지칭하는 별칭이다. 벽화에 나열된 이름들 역시 모두 같은 음모론에서 ‘김씨 연관 남성’으로 등장한다.

일부 네티즌이 주목한 건 여성의 얼굴이다. 김씨를 가리키는 ‘쥴리’를 그린 것으로 보이지만 하얀 피부, 금발, 파란 눈동자가 선명하게 표현된 것을 두고 ‘뭔가 이상하다’ ‘어색하다’ 등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의문을 해소할 그림이 온라인상에 등장했다. 호주 그래피티 아티스트 러시석스가 2016년 7월 호주 멜버른 한 건물 외벽에 그린 작품이다. 머리카락과 생김새 모두 쥴리 벽화에 등장하는 여성과 매우 유사하다. 왼쪽에는 ‘테일러 스위프트 1989~2016: 사랑의 기억에서’라는 글귀가 적혀있는데, 멀쩡히 살아있는 테일러의 죽음을 뜻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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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 테일러 스위프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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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VS칸예 갈등…벽화 속 이야기

이 벽화에 얽힌 이야기는 2009년 MTV 뮤직 어워드 현장에서 시작된다. 당시 신인이었던 테일러는 여자 뮤직비디오 부문 최우수상 수상자로 호명된다. 그가 무대에 올라 벅찬 수상 소감을 전하는데, 래퍼 칸예 웨스트가 갑자기 무대에 난입해 마이크를 뺏는다. 그러더니 “테일러가 상을 받아 기쁘긴 해. 근데 비욘세의 뮤직비디오가 역대 최고야”라는 돌발 발언을 한다.

그렇게 시작된 테일러와 칸예의 악연은 7년여가 흐른 2016년 또 한 번 폭발했다. 칸예가 테일러를 노골적으로 저격한 곡 ‘페이머스’(Famous)를 발표하면서다. 그는 노래에 “테일러랑 잘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그 X(bitch)을 유명하게 만들어줬으니까”라는 가사를 담는 거로 모자라, 뮤직비디오에 테일러를 본뜬 알몸 밀랍 인형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비판 여론이 일자 칸예는 “테일러가 해당 가사에 대해 허락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테일러는 곧장 입장문을 내 “내게 동의를 구한 적 없다”고 맞섰다. 이후 이번에는 당시 칸예의 아내였던 킴 카다시안이 나서 재반박을 거듭했다. 칸예와 테일러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한 것이다. 거기에는 테일러가 가사를 들은 뒤 “멋진 것 같다”고 호응하는 부분이 나온다.

◇‘테일러는 죽었다’ 벽화 등장…마지막 반전 있었다

대중들은 테일러를 향한 십자포화를 쏟아냈다. 킴 카다시안 역시 인스타그램 등에 뱀 이모티콘을 연달아 게시하는 등 테일러를 향한 공격에 가세했다. 테일러에게는 거짓말쟁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고 이 일은 테일러 스네이크(snake) 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반전은 지난해 3월 일어났다. 칸예에 대한 여론이 뒤집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녹취록이 사실은 다른 부분을 짜깁기한 것이라는 게 밝혀진 거다. 진실은 이렇다. 원래 통화에서 칸예는 논란이 된 ‘비치’(bitch)라는 단어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가사가 실제 발표된 것보다 순화된 내용이었다. 테일러는 “가사 내용이 나쁘지는 않지만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뒤 다른 부분 가사를 듣고 “멋진 것 같다”는 평가를 한다.

멜버른의 벽화는 테일러가 비난을 받을 당시 그려졌다. 당시 러시석스는 인스타그램에 해당 벽화 사진을 올리고 “최근 테일러의 죽음은 가슴 아프다. 그녀의 기억을 기리는 기념관에 꽃을 남겨두고 촛불을 켜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테일러가 이번 사건으로 연예계에서 퇴출당했으며 대중들에게도 ‘죽은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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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그려진 이른바 '쥴리 벽화'. 전날까지 적혀 있던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 같은 문구가 흰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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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 여씨 “쥴리 벽화, 호주 벽화 거리 참고했다”

쥴리 벽화를 내건 건물주 여모씨는 최근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애초 벽화의 거리를 구상해 주변을 밝히려는 계획이었음을 강조했다.

여씨는 이 과정에서 호주 멜버른 5대 관광 명소 중 하나인 벽화의 거리를 언급했다. 그는 “재작년 멜버른 벽화 거리를 다녀오고 나서 관철동 골목도 관광 명소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31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는 “멜버른 여행 당시 봤던 그림을 몇개 뽑아 작가에게 의뢰했다”며 “그림이 완성될 무렵에는 재밌는 문구를 넣고 싶어 풍자적 의미로 쥴리라는 화두를 던졌다”고 했다.

실제로 테일러의 얼굴 뿐만 아니라 쥴리 벽화 속 빨간색 하트 그림도 멜버른에 있는 벽화와 유사하다. 2013년 멜버른이 지역 예술가 100여명을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당시 그려진 그림이다. 하트 가운데 ‘멜버른’(MELBOURNE)이라는 문구가 적힌 것과 꽃잎 등 디테일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구성이 똑같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표절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상담사례집에 따르면 벽화와 같이 개방된 장소에 전시된 미술저작물을 복제할 때, 상업적 목적을 가졌거나 항시 전시를 위한 경우라면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

[문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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