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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미국은 어떻게 피를 팔아 연간 200억달러 벌어들이게 됐나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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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프랑스 화가 쥘 아들레르가 그린 `염소 피의 수혈`(1982).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1900년 혈액형 분류를 규명하기 전까지 수혈은 도박이었다. 의사들은 위급 환자에게 다른 사람의 피나 송아지, 염소 피를 수혈하기도 했다. [사진 제공 = 파리의학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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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 프로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고환암을 이겨내고 세계적 사이클 경기 '투르 드 프랑스'에서 7연패를 달성한 것과 사실 그 위업이 도핑의 결과였다는 반전으로 말이다. 도핑 약물로는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에리트로포이에틴'과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알려져 있으나 하나 더 있다. 그의 피다. 도핑 혐의를 조사한 미국반도핑기구 보고서를 보면 "랜스 암스트롱은 금지된 수혈을 속임수로 썼다. 1년 동안 자신의 피를 빼내 보관했다가, 투르 드 프랑스가 열리는 동안 밤에 팀 닥터의 호텔 방에서 금지된 수혈을 받곤 했다"는 기술이 나온다. 신선한 피를 일정량 수혈하면 적혈구가 더 많아지고, 근육에 더 많은 산소가 공급돼 사이클 선수가 산을 더 세차게 오를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계반도핑기구는 피를 금지 약물로 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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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역 출간된 로즈 조지의 '5리터의 피'는 우리 몸속 피를 의학, 역사, 사회, 경제 등 여러 관점에서 조망한다. 오늘날의 대량 헌혈 체계를 마련한 선구자들을 조명하는 한편, 피를 여전히 거래 상품으로 취급하는 미국의 혈장 산업을 고발한다. 또 고대의 사혈(피를 빼는 것) 관습에서 출발해 피에 얽힌 그릇된 신화와 믿음의 역사도 소개한다. 제목 '5리터의 피'는 일반적인 성인의 혈액량을 가리킨다. 저자는 한 주제를 파고드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소문난 작가로, 빌 게이츠는 2019년 이 책을 여름휴가 도서로 추천하며 "혈액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 등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에선 3초마다 한 번꼴로 수혈이 이뤄진다. 170여 개국 헌혈센터 1만3000여 곳에서 해마다 1억명이 넘는 사람이 헌혈한다. 이 피들은 외상 환자와 암 환자, 만성 질환자, 아이를 낳는 산모에게 간다. 이 덕분에 죽을 뻔한 사람이 살아남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같은 헌혈·수혈 체계가 확립된 데는 두 사람의 공이 크다. 대규모 헌혈, 혈액 저장 및 운송, 수혈 시스템을 마련한 의학자 재닛 마리아 본과 자발적 혈액 기증 체계를 만든 영국 공무원 퍼시 레인 올리버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9년 4월 초 대량의 혈액 공급이 필요할 것이라 예상한 재닛은 자신의 블룸스베리 집에 의사와 병리학자들을 모아 '응급수혈단'을 조직한다. 피를 얼마나 어떻게 수혈할지, 저장 용기는 무엇을 쓸지, 혈액은 어떻게 운송할지 등이 여기서 논의됐다. 퍼시가 헌혈 체계를 바꾸기 전까지는 자기 피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돈을 벌기 위해 마약 투약자와 성생활이 문란한 사람들이 헌혈에 몰려들었고, 피의 품질은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자발적 혈액 기증이 맞는다고 판단한 퍼시는 1920년대 초 자원봉사자 몇 명과 전화기 한 대로 시작해 런던수혈봉사단을 조직한다. 이후 한 해에만 100회 넘게 영국 곳곳을 누비며 강연해 헌혈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혈액의 55%를 차지하며 단백질을 비롯한 지방, 수분, 염분이 녹아 있는 혈장은 아직 거래의 대상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978년 모든 혈액의 라벨에 유상·무상을 표기하도록 요구한 이래 유상 혈액은 자취를 감췄지만 유상 혈장은 살아남았다. FDA가 미국인이 한 주에 두 번까지 혈장을 팔 수 있도록 허락했고, 돈이 됐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의약품 개발에 혈장을 이용한다. 피를 파는 개인들은 혈장 헌혈 한 번의 대가로 30~50달러를 받는다. 혈장은 해외로도 나간다. 최대 혈장 수출국인 미국이 혈액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은 연간 약 200억달러에 달한다. 책은 이 과정에서 오염된 혈액으로 인한 C형 간염 바이러스와 HIV 바이러스의 전파를 우려하며 그 피해로 의심되는 각종 사례들을 전한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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