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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가부장제 편견 깨는 ‘싱글맘’들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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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새로고침] JTBC ‘내가 키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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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은 정상가족 이념이 강하게 작동하는 세계였다. 2013년 부부 예능 <자기야―백년손님>(에스비에스)과 육아 예능 <아빠 어디가>(문화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한국방송2)가 큰 인기를 끌 무렵,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는 고부갈등 등을 다룬 토크쇼가 온종일 방송되었다. 오죽했으면 송은이가 비혼 개그우먼들은 설 자리가 없다며 방송사 밖에서 살길을 도모했을까.

그러나 이후 <나 혼자 산다>(문화방송) 같은 비혼 1인 가구의 삶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히트를 치면서 이런 분위기는 약화되었다. 여전히 비혼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미운 우리 새끼>(에스비에스)의 고루함이 문제지만, <전지적 참견 시점>(문화방송), <온앤오프>(티브이엔), <독립만세>(제이티비시) 등 자족적이고 활기찬 비혼 라이프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잇달아 만들어지면서 그런 시선의 불필요성이 인식되었다. 대표적인 육아 예능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자발적 비혼모 사유리가 출연한 것은 획기적인 변화이다. 출생률이 곤두박질치는 와중에도 사유리의 비혼 출산을 비난하는 여론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수호하고픈 대상이 출생률인지 가부장제인지 되묻게 만든다. 다행히 제작진이 사유리의 출연에 문제가 없다는 바른 판단을 함으로써, 프로그램이 다루는 핵심 콘텐츠가 정상 가족 모델이 아닌 육아임을 분명히 하였다.

일찍이 종편 채널은 중장년 시청자를 겨냥해 이혼 및 재혼을 콘텐츠로 삼는 예능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가상 재혼 커플을 표방한 연예인 관찰 예능 <님과 함께>(제이티비시)나 ‘돌싱’들의 짝짓기 리얼리티 예능인 <꽃탕>(제이티비시)은 색다른 재미를 안겼다. 이혼한 커플의 관계 개선을 꾀하는 관찰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티브이조선)도 참신한 기획이었다. 자꾸 재결합으로 몰고 가려는 음험함이 거슬렸지만, 이혼 커플들이 맞닥뜨리는 감정의 문제를 비교적 진솔하게 담아냈다. 종편 예능들을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최근 본격적인 ‘돌싱’들의 짝짓기 관찰 예능 <돌싱글즈>(엠비엔)와 이혼 후 육아하는 여성들을 조명한 <내가 키운다>(제이티비시)가 시작됐다. 지상파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혼남 연예인을 내세운 <돌싱포맨>(에스비에스)을 내놓았다. 이제 이혼이 대세 예능콘텐츠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혼은 흔하다. 매년 12만쌍이 이혼하며, 이는 결혼 건수의 절반에 이른다. 하지만 예능에서 이혼을 어떻게 다룰지는 여전히 민감한 문제다. 가령 <돌싱글즈>를 보자. 3박4일간 8명의 남녀가 합숙하며 짝을 찾는다. 미혼보다 고려할 사항이 훨씬 많은 돌싱들에게 3박4일은 너무 짧지 않은가. 과거 <짝>(에스비에스)에서 출연자들이 1주일간 ‘애정촌’에 입소해 수차례 선택 과정을 거쳤던 것이나, <하트 시그널>(채널에이)에서 출연자들이 한달간 같은 집에서 출퇴근하며 서로를 탐색했던 것과 비교해보라.

처음 참가자들은 여느 짝짓기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첫인상과 외모로 호감을 타진해 나갔다. 이들은 결혼과 이혼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넓혀갔다. 하지만 이튿날 나이, 직업, 자녀 유무 등이 공개되자, 그동안의 감정선은 뒤집혔다. 역시 가장 큰 변수는 자녀였다. 그동안 별로 친하지 않던 두 남녀는 4살 아들을 키우는 공통점에 의해 급격히 친해졌다. 남자는 자신이 이혼 후 공황장애를 앓고 있으며,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상대에 대한 호감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둘의 감정은 불확실하지만, 나중에 각자 아이와 함께 ‘키즈카페’에서 만나자는 따뜻한 약속을 한다. 한편 호감을 느끼던 여자가 아들을 키운다는 말에 황급히 마음을 접은 남자도 있다. 그는 여성 참가자 중 유일하게 자녀가 없는 여성에게 급히 호감을 표했다. ‘수가 빤히 보이는’데다 솔직하지도 못한 남자의 용렬한 태도는 상대 여성은 물론이고 패널과 시청자들에게 비웃음을 안겼다. 아이를 비롯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미혼남녀보다 훨씬 많으며, 마음의 상처까지 있어서 훨씬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돌싱들의 짝짓기가 너무 성급하고 조악하게 기획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자녀양육은 돌싱들의 삶에 가장 큰 변수인데, <내가 키운다>는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이다. 김나영은 육아전쟁을 겪고 있다. 혈기왕성한 6살, 4살 아들을 엄마 혼자 감당하다니! 김나영은 유튜브와 방송을 통해 생계노동과 육아를 일치시키며, 누구보다 아들을 잘 키우고 있지만, 때로 무척 지쳐 보인다. 단독 촬영이 끝난 뒤 다시 아이들과 남겨질 것이 두렵다고 말하거나 늦은 밤 아이들을 재운 뒤 설거지를 하는 그의 구부정한 뒷모습에 워킹맘들은 자신을 보는 듯하다. 그에겐 고된 육아를 도와줄 원군이 필요해 보인다. 김나영의 둘째 아들은 자신을 여자라고 말하며, 가끔 딸로 오인된다. 김나영은 그런 상황을 금기시하지 않으며, 성 역할에 갇히지 않는 양육을 지향한다. 이는 오히려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기에 가능한 분위기가 아닐까. 아버지가 아들의 성 역할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가부장제의 약화가 ‘결손’이 아닌 ‘자유로움’으로 느껴진다.

김현숙은 7살 아들을 홀로 키우다 밀양의 친정으로 살림을 합쳤다. 친정아버지가 아들 양육에 필요한 성인 남자 역할을 해주겠다고 나선 덕분이다. 그는 김현숙의 친부가 아니다. 이혼 후 삼남매를 홀로 키운 친정 엄마와 나중에 재혼했지만, 김현숙의 아버지이자 아들의 할아버지 역할을 해준다. 김현숙은 아들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바꾸는 절차를 밟고 있다. 조윤희는 6살 딸을 키운다. 사회성이 뛰어난 아이지만, 입이 짧은 탓에 엄마는 뭘 먹일까 늘 고민이다. 조윤희는 싱글인 언니와 함께 살며 도움을 받기로 한다. 김현숙과 조윤희는 엄밀한 의미에서 ‘솔로 육아’가 아니다. 아버지가 없을 뿐, 친정 조력자들과 함께 키우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가모장적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아비 없이 홀로 키우거나, 조력자들과 함께 대안 가족을 이루어 양육하는 가정이 많아질수록 가부장제는 녹아내릴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

한겨레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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