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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한국 드라마가 원작인 미드…‘국뽕’ 느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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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의 OTT 충전소] 미국 드라마 ‘썸웨어 비트윈’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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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딸이 납치된다. 연쇄살인범을 쫓던 방송국 시사프로그램 피디인 엄마는 딸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지만 딸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다. 온 세상을 잃은 엄마는 호수에 몸을 던진다. 죽음의 순간, 누군가 그를 구한다. 다시 돌아온 세상은 딸이 납치되기 일주일 전이다. 가만히 있으면 다시 딸은 납치되고 죽고 말 것이다. 엄마는 딸을 구하고 연쇄살인도 막을 수 있을까. 2017년 미국 지상파 <에이비시>(ABC)에서 방송했고,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10부작 <썸웨어 비트윈>이다. 줄거리만 보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드라마가 있는데?’라며 의아해하는 독자들도 있겠다. <썸웨어 비트윈>은 이보영·조승우 주연의 2014년 한국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에스비에스)의 판권을 사서 만든 리메이크 작품이다.

지금이야 <복면가왕>(문화방송), <너의 목소리가 보여>(엠넷) 같은 예능도 국외에서 리메이크되어 엄청난 인기를 얻지만, 2014년엔 한국 드라마가 미국에서 리메이크되는 일은 드물었다. 미국 드라마 시스템은 보통 맛보기(파일럿) 에피소드를 만들고 반응이 좋으면 본편을 이어서 제작하지만, 이 드라마는 원작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전편이 제작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귤은 물 건너가면 탱자가 된다는데, 물 건너간 드라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 제작진이 화려하다. 이보영이 연기했던 엄마 역할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폴라 패튼이 맡았고, 조승우가 연기했던 전직 형사 역할은 영화 <데스티네이션> <더 파이터>에서 주연을 맡았던 데본 사와가 열연한다. 각색은 <캡틴 아메리카> <썸머랜드>를 쓴 스테판 톨킨이 맡았다. 원작자인 최란 작가도 책임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최근에도 <마우스>(티브이엔)로 화제를 모았던 최란 작가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원래는 <피디 수첩>(문화방송)을 담당했던 교양작가였다. 실제 범죄사건을 추적하던 작가의 경험은 드라마를 더욱 빛나게 한다. 가슴 쫄깃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현실감 있는 묘사를 한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변화를 세심하게 보여준다. 이런 원작이 미국의 자본을 만나면서 범죄 스케일은 더 커졌고, 그래서 주인공들도 훨씬 더 고생한다. 다만 한 가지, 우리 드라마의 시작이었던 안데르센 어머니 이야기가 빠진 것은 아쉽다.

그렇다면 시간을 거슬러 간 주인공은 운명을 바꿨을까? 물론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증거는 사라지고 잡은 범인은 풀려난다. 카페에서 만난 이상한 분위기의 여자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누군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대가를 치르기 전에는 이길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드라마 막바지에 드러난다.

대중문화는 물과 같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막으면 돌아가고 저항하면 무너진다. 무엇보다 한곳에 고이면 썩는다. 다행히도 지금은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전세계에 새로운 자극이 되고 있다. 프로그램 기획한다고 하면 일본 위성 방송의 전파가 잡히던 부산으로 내려가던 시절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방탄소년단(BTS)이 두달째 ‘빌보드 핫100’ 1위를 하는 오늘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좋은 콘텐츠의 국적을 묻는 것은 자본의 국적을 묻는 것만큼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이 무더운 여름, 우리나라 드라마를 원작으로 만들어 미국 지상파에서 방영한 최초의 미드를 보면서 은근슬쩍 ‘국뽕’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 재밌으니 말이다.

박상혁 씨제이엔엠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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