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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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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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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안개들이란·마른 여자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 = 2015년 현대시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독특한 시풍을 보여온 권창섭의 첫 번째 시집이다.

기발하고 독특해 때로는 농담처럼 들리는 상상력 넘치는 시어가 신선하다. 시의 구성과 진행도 젊고 새로운 감각으로 가득하다. 외국어를 섞어 쓰는 해체적 실험도 시도한다.

감각적이고 파격적이면서 유머 감각까지 갖췄지만, 단순히 언어유희나 말장난에 그치는 건 아니다. 시인 나름의 조탁을 통해 언어의 한계를 넘으려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까스뽈, 가스불, 아무래도 가스불을 끄지 않고 나온 것 같아, 가스불, 그런 것만 같아, 뽈쓰까, 우째야쓰까,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계속 불붙어 있을 것만 같아, 가스불, 크루프니크가 졸아붙고 있을 것만 같아, 크라이시스, 냄비가 달아오르고 있을 것만 같아, 위기를 기회로, 기회를 회기로, 회기를 회귀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달려가야만 하는데, (…) 그렇지만 여기는 회기역, 아무리 1호선을 타고 달려도, 바르샤바에 다다를 순 없을걸, 회기가 기회가 된다면, 기회가 위기가 될 수도 있을걸, 졸아붙는 크루프니크를 해결할 수 있을걸, 불타는 바르샤바를 구할 수 있다, 육룡이 나르샤, 봐, 폴란드로 날아가잖아, 포기하지 마라, 불 끌 때까진 불 끈 게 아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시 '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 일부)

요즘 뜨는 소설가 장류진은 추천사에서 "사람들은 왜 시를 쓸까? 이런 궁금증도 가져본 적 있다. 사람들은 왜 시를 읽을까? 이제는 안다. 어떤 가려움, 어떤 알쏭달쏭은 시를 쓰거나 읽는 행위를 거쳐서야 잦아들 수 있다는 것을"이라며 "시를 통해서만 드러나고 감각할 수 있는 삶의 구체가 있다는 걸, 권창섭의 시집을 읽으며 느꼈다. 그리고 그것에 매료되었음을 고백한다"고 말했다.

창비. 172쪽. 9천 원.

연합뉴스


▲ 도대체 이 안개들이란 = '나의 추억엔 온통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가 내린 함구령에 굴복하여 천천히 안개로 변해 가던 몸뚱이/ 안개의 작은 미립자가 되어 흩어지던 꿈/ 내 등뼈를 따라 안개의 이파리가 돋아나 파닥이기도 했다./ 나는 안개의 속도로 천천히 안개의 무리가 되어 갔고/ 안개에 둘러싸인 것이 두려워 한때는 울음을 터뜨렸으나/ 안개에 젖은 눈으로 안개에 뺏긴 넋으로 안개 중독자가 되어 갔다./ 안개의 힘을 믿었고 안개의 나라를 꿈꾸었다./ 누가 안개의 미립자로 흩어져 사라지는 것조차 몰랐다.' (시 '도대체 안개들이란' 일부)

등단한 지 30년을 바라보는 김왕노의 신작 시집이다.

시인은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이 반복되는 인간 세계를 쉽고 서정적인 시어로 노래했다. 지나간 추억을 돌아보며 느끼는 그리움을 애절하게 형상화한다. 낭만과 미학을 추구하는 서정시의 본질에 충실해지려 한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김종회는 "자기 성찰의 열린 관점, 활달한 상상력의 시현, 생명의 비밀에 대한 경외, 세상살이의 곡절과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엄정하고 애절한 인식을 시의 문면에 함축했다"고 평했다.

김왕노는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집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 '중독' 등을 펴냈다. 한국해양문학대상, 박인환문학상, 지리산문학상, 한성기문학상, 풀꽃문학상 등을 받았다. 한국시인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천년의시작. 132쪽. 1만 원.

연합뉴스



▲ 마른 여자들 = 미의 기준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한다. 요즘 같으면 뚱뚱하다고 여길 만한 여성의 몸매가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시대가 있었고, 어떤 나라에선 장신구를 많이 걸칠 수 있거나 목, 입술처럼 신체 특정 부위가 두드러지게 발달한 사람이 미인이란 소리를 듣기도 한다.

현대사회로 오면서는 대체로 날씬한 여성이 아름답게 인식된다. 그러다 보니 마른 몸매를 원하는 여성들은 거식증을 비롯한 여러 섭식 장애에 시달리는 사례가 보고된다.

뉴질랜드 출신 작가 다이애나 클라크의 데뷔작인 이 소설은 이처럼 섭식 장애를 앓는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십 대 청소년 시절을 거쳐 성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거식증과 폭식증으로 외모는 물론 삶 전체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여성들의 아픔을 형상화한다. 다이어트, 레즈비언, 데이트 폭력, 성폭력 등의 문제를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거침없이 표현한다.

창비. 628쪽. 1만6천800원.

연합뉴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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