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에서 통치로·트러블과 함께하기
중국 신좌파 기수로 일컬어지는 왕후이(汪暉) 칭화대 교수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쓴 논문과 강연·발표 원고를 묶어 두툼한 단행본으로 펴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20세기 중국'이다.
저자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시대 구분법인 '세기'에 반기를 든다. 그는 "1900년 이전에는 세기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중국인이 거의 없었다"며 "세기 혹은 20세기는 객관적인 시대 구분 방법이 아니라 특수한 시세에 대한 파악을 통해 역사적 행위의 방향을 새롭게 확정하는 주체적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저자가 제안하는 개념은 '단기 20세기'이다. 단기(短期)는 말 그대로 짧은 시기를 뜻한다. 그가 규정한 중국의 단기 20세기는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부터 문화혁명이 끝난 1976년까지이다.
그는 "단기 20세기와 기나긴 혁명은 서로 중첩한다"며 "이 혁명이 완성하려는 사명은 하나의 혼합체로, 19세기 과제를 포함하면서도 이 과제를 비판·폐기·초월했다"고 논한다.
이어 저자는 정치적 통합, 문화 정치, 인민전쟁, 정당과 계급을 분석해 지금까지 성공하지 않고 의식되지 않은 중국의 정치적 잠재력을 찾는다.
글항아리. 1천24쪽. 4만8천 원.
▲ 재신론 = 리처드 카니 지음. 김동규 옮김.
신은 존재하는가. 다른 신을 배척하는 종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종교철학 연구자인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재신론'(Anathesim)을 주장한다. 재신론은 신이 있다는 유신론, 신이 없다는 무신론과는 다른 제3의 길에 해당한다.
그는 교조주의적 신학과 전지전능한 신을 해체하고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이방인으로서의 신을 대안적 신으로 보자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재신론은 성스러운 것이 세속적인 것 안에, 세속적인 것을 통해, 세속적인 것을 향해 존재한다고 말한다"며 "심지어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은 구별되기는 하지만,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역자인 김동규 서강대 연구교수는 "신 자체를 버리는 것이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종교 간 대화의 여지를 닫아버릴지도 모른다"며 "신을 다시 말하고자 하는 시도인 재신론이 오히려 더 급진적이고 유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갈무리. 384쪽. 2만1천 원.
▲ 지배에서 통치로: 근대적 통치성의 탄생 = 이동수 외 지음.
군주가 영토와 신민을 '지배'하는 전근대적 통치체제에서 벗어나 인민이 주권자로서 근대 국가를 형성해 정치체가 '통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과정을 분석했다.
제목에 등장하는 '통치성'(governmentality)은 여러 층위에서 작동하는 정치와 행정의 통치 능력을 뜻한다.
연구자 8명이 쓴 글의 주제는 르네상스 시대 공화정 성립과 특징, 자치권 역사와 전개, 근대국가 등장과 행정, 법치와 헌정주의, 통치를 위한 분배 문제 등 다양하다.
편집을 맡은 이동수 경희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금 민주주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정치적 파당은 국가를 특정 지배자나 집단이 통치하는 도구로 간주하는 대신 여러 시민의 공동체로 바라보는 공화주의적 통치성 개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사랑. 328쪽. 2만5천 원.
▲ 트러블과 함께하기 = 도나 해러웨이 지음. 최유미 옮김.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인 저자가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라는 문구를 제시했다.
여기에서 친척은 인간 범주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지구에서 공존하는 수많은 생물을 대상으로 한다. 친척 만들기는 멸종위기에 빠진 생물을 보호하고,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관계에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저자는 최근 담론인 '인류세' 대신 '지하세'(地下世)라는 개념을 선보인다. 지하세는 그물망과 같은 땅속 존재들의 연결을 뜻한다. 그는 지하세에서 인간은 중요한 행위자가 아니며, 다른 생물과 연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마농지. 408쪽. 2만3천 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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