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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20세기 중국이 남긴 최대의 유산, “능동적 정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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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BOOK]

중국 ‘비판적 지식인’ 왕후이

혁명과 주권국가 이룬 정치

한국어판에만 새 원고 실려

‘20세기 중국’ 3부작으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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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인 지난 7월1일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 내걸린 마오쩌둥 초대 주석의 대형 초상화 앞에서 군악대가 행사에 앞서 리허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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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20세기

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

왕후이 지음, 송인재 옮김 l 글항아리 l 4만8000원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에서 시작해 1991년 소련·동구권 해체로 상징되는 냉전 종결까지를 ‘단기 20세기’라 부르고, 이를 ‘극단의 시대’로 규정했다. 이 시대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 혁명이 진행된 근대의 형성을 다룬 그의 3부작(<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이 규정한 ‘장기 19세기’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비판적 지식인’ 왕후이(汪暉·62)의 주된 문제의식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눈을 돌려 아시아, 그중에서도 중국을 바라보면, 유럽과 다르게 ‘단기 20세기’야말로 “기나긴 혁명”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중국이 주권국가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혁명을 이룬 1911년부터 1976년까지의 시기를 ‘단기 20세기’로 규정하고, 여기에서 미래를 맞이할 사상적 자원을 찾아내는 데 주력한다.

최근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단기 20세기>는 왕후이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20세기 중국’을 주제로 쓴 논문, 강연, 발표원고 등을 모은 책이다. 원서는 2015년 출간됐는데, 이번 한국어판에는 지은이의 요청으로 2017~2018년 쓴 원고들이 서론과 1장으로 새롭게 실려 눈길을 끈다. 이 원고들은 지은이가 지난해 6월 중국에서 출간한 <20세기의 중국> 3부작 가운데 1부에 해당하는 <세기의 탄생>의 서론과 1장이기도 하다. 옮긴이가 설명하듯, “시리즈 제목과 구성은 왕후이의 현재 관심이 그동안의 중국 현대사상 관련 논의를 ‘20세기 중국’이란 주제로 수렴해서 정리하고 재조명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지은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근대 사상의 흥기>(2004)가 고대에서 근현대에 이르는 중국의 사상적 자원들을 탐사했다면, 새로운 ‘20세기 중국’ 시리즈는 “그것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해 20세기 중국과 그 정치적 과정을 집중 탐색한다.”

한국어판에 새로 실은 서론과 1장에서 지은이는 ‘세기’라는 개념 자체를 벼리는 데 집중한다. 중국에는 유럽에서 근대를 형성한 19세기가 없었고, 더 나아가 세기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다. 세기는 20세기와 더불어 시작했기 때문에 곧 “세기/20세기”다. “중국에서 유럽의 19세기처럼 ‘독립되어 있고 명명하기 어려운 시대’를 찾으려면 19세기의 연장이자 부정인 20세기로 눈을 돌려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세기/20세기가 “전 세계적 범위의 공시적 관계”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고·금과 동·서로 나누어 단일한 축을 기준으로 배열할 수가 없는, “다층적 시간의 횡적 관계”가 바로 20세기의 조건이다. 이는 중국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시공간적 좌표를 묻고, 제국주의와 봉건제도 등 중첩된 불균등과 모순을 뛰어넘기 위한 ‘이중 혁명’을 발전시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세기 개념은 보편적 역사관의 탄생, 이 보편적 역사관 내부의 불균형성과 여기서 형성되는 모순과 충돌에 대한 사유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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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한 왕후이 중국 칭화대 인문학부 교수. 왕후이는 ‘20세기 중국’ 개념에 자신의 사유를 집중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은이는 중국이 이 세기에 대한 대응 속에서 ‘혁명’(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체제)과 ‘연속성’(제국주의에 대한 주권국가)을 창제해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핵심적인 유산은 “능동적 정치성”이라고 짚는다. “중국은 다민족 제국의 기반 위에서 단일한 주권 공화국을 만들었고, 정당과 국가를 부정하는 문화운동으로 새로운 정치를 정의했으며, 유럽의 19세기 정당·국가와 구분되는 정치 유형을 창조했다.” 지은이는 이것이 현실적 조건 내부에서 직접 도출된 것이 아니라, 세기를 직면하고 그 객관적 조건을 뛰어넘고자 하는 창조적 에너지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19세기 유럽에서 나타난 ‘국가 정치’의 문제점까지 함께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기에, 20세기 중국은 높은 정치적 에너지를 바탕으로 삼아 국가와 인민 사이에 위치한 정당이라는 중개자가 주도하는 ‘당-국가’(黨國) 체제라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 못지않게 중요한 ‘문화’가 국가 안팎에서 정치적 주체를 만드는 동력을 제공했고, “문화와 정치를 구분해 문화가 정치에 개입하고 정치를 격발하는 방식”은 20세기 중국의 독특한 현상을 이루었다.

중국의 ‘단기 20세기’를 고찰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지은이는 이러한 ‘능동적 정치성’의 유산이 고갈된 오늘날의 ‘탈정치화’ 경향에 비판을 집중한다. 더이상 논쟁하지 않음으로써, 또 ‘혁명과 건설’ 가운데 혁명을 떼어낸 ‘건설’에 매달리면서, 중국의 ‘당-국가’ 체제는 사실상 당과 국가가 한몸이 된 ‘국가-당’(國黨) 체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최근 30년 동안 중국은 이미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사회 모델로 전환했고 ‘세계혁명’의 중심에서 가장 활발한 자본 활동의 중심으로 전환했으며, 제국주의 패권에 대항하는 제3세계 국가에서 그들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적수가 되었고, 계급 소멸로 가는 사회에서 ‘재계급화’ 사회로 전환했다.” 지은이는 이 같은 ‘탈정치화’는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새로운 역사적 조건이며, 이 위기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세계화 등의 영향 아래 정치 형식과 사회 형식이 어긋나버리는 “대표성의 균열”에서 비롯했다고 짚는다.

‘탈정치화’를 극복하기 위해선 주체의 능동적인 행위를 다시 일으킬 ‘재정치화’가 필요하다. 지난 세기의 유산으로부터 ‘재정치화’에 필요한 자원들을 찾아보자는 것이 지은이의 제안이다. 특히 그는 “자기를 반대하거나 부정하는 논리가 20세기 정치의 미래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19세기의 과제를 끌어안고도 이를 비판·폐기·초월하는 등 “자기 반대와 부정”의 논리로 늘 새로운 운동성을 찾아낸 것이야말로 중국 ‘단기 20세기’의 핵심 유산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문화대혁명 직후 70년대에 “자기 반대와 부정” 대신 “자기 긍정의 신시대”로 재빠르게 접어들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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