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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뉴스룸에서] 누가 진실의 법정을 독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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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26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재수감 입장을 밝히고 있다. 창원=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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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오늘도 먹기만 하면 체한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대법원 유죄 판결을 두고 나온 여권 반응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무릎이 툭 꺾여버리는 마음”에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고민정 의원의 페이스북 글이었다. 김 지사 발언인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를 해시태그로 붙인 걸 보면 그가 말하려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정치적 동지 김 지사가 범죄자가 되는 상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기 고백과 함께 에둘러서라도 법원 판결은 진실이 아니라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던 걸 게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권을 관통하는 정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세균 전 총리는 김 지사가 들어갈 곳이 ‘거짓의 감옥’이라고 비유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2017년 대선은 불법적 방식을 동원해야 할 이유도, 의지도 전혀 없었던 선거”라고 했다.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에 관여했다는 법원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친여 성향 방송인 김어준은 한술 더 떠 “이 개놈XX들 진짜 열받네”라며 재판부를 비난했다.

여권의 반응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죄를 지어도 그 양반은 죄를 지을 사람이 아니다”(김어준)라는 언급이 보여주듯 김 지사의 도덕성에 대한 깊고 두터운 믿음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김경수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변론은 현실의 법정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증이다. ‘착한 김경수가 악질 선거브로커에게 당했다’는 감정적 호소도 진실을 가리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법원 판결 가운데 무엇이 잘못인지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일이지만, 그런 얘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드루킹의 킹크랩(여론조작 프로그램) 시연을 김 지사가 봤느냐는 것이다. ①변호인 주장처럼 안 봤을 수도 있지만 ②보긴 봤는데 무슨 의미인지 몰랐을 수도 있고 ③반대로 시연을 봤고 공범 관계를 맺었을 수도 있다. 1심부터 3심까지 법원의 일관된 입장은 적어도 ①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선 기간 여권 핵심 인사가 여론조작 범죄 현장에 있었고, 오사카 총영사 자리 제안이 오간 사실을 감안하면 왜곡이나 거짓이라고 몰아가긴 어려운 결론이다.

유ㆍ무죄를 가리키는 여러 증거 속에서 재판부가 어떻게 유죄의 심증을 갖게 됐는지, 그게 합당한 결론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지적하고 싶은 건 언제부터인가 자기 편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불복부터 하고 보는 여권의 행태다. 여권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도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는 무죄임을 확신한다”며 감쌌다. 유죄의 증거가 명백하고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났는데도 위증 강요 이슈를 제기하며 사건을 재조사했다가 ‘뒤집기’에 실패한 것은 익히 본 대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진보논객 강준만 교수는 저서 ‘부족국가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정치적 부족주의의 대표 사례로 윤미향 사건과 박원순 사건을 들었다. 진보의 경우 자신들은 선한 권력이라고 믿는 데다 반독재 투쟁 당시 미덕이었던 집단에 대한 충성과 동지애가 변질되면서 정치적 부족주의에 빠져들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사법적으로 단죄된 전 정권 사례와 비교하면 여권의 반응이 유난스러운 게 사실이다.

진실을 판별하는 건 어떻게 보면 신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 국가가 현실의 법정을 운영하는 건 완벽하진 않아도 그게 최선이라는 나름의 합의에서다. 여권에 사법부 결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편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독선과 아집은 버려야 한다.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 적폐청산부터 꺼내 드는 위험한 발상과도 거리를 둬야 한다. 누구도 역사와 양심의 법정, 진실의 법정을 독점할 권리는 없다.
한국일보

김경수 전 경남지사 지지자들이 26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김 전 지사를 응원하고 있다. 창원=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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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뉴스부문장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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