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서양원 매일경제신문 전무
대권 도전에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며 정국 상황과 정책 비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국내외 사례를 들며 부동산, 규제 완화, 고용 등 경제 정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상세하게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충우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는 작은 정부론을 주장하는 프리드먼의 철학을 가장 잘 반영한 경제학 고전 중 하나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 책이 자신의 신념과 정확히 같다고 강조했다. 1979년 윤 전 총장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당시는 경제학도들 사이에서 프리드먼보다는 케인스 이론이 '대세'였지만, 그의 부친이자 경제학자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 책을 추천했고, 윤 전 총장은 "이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윤 전 총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 대검 검찰연구관을 할 때까지 책을 항상 갖고 다녔다"고 말하면서 "상부에서 이런저런 단속 지시가 내려오면, 프리드먼 책을 다시 읽어보고 '이런 건 단속하면 소비자의 선택할 자유를 침해한다'는 요약 보고서를 올리곤 했다"고 이야기했다. 윤 전 총장은 "프리드먼의 주장을 소위 공권력을 제어하는 데 많이 써먹었다"며 "나쁜 규제는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역대 정권이 '규제 개혁'을 내세웠지만 번번이 실패했는데.
▷시장의 신뢰, 투명성을 위한 공정한 룰은 필요하다. 정보비용과 거래비용을 낮추기 위한 규제는 '착한 규제'다. 반면 내용 자체를 건드리는 규제는 '나쁜 규제'다. 공무원들이 현실을 망각하고 과도하게 콘텐츠를 규제하면 시장의 투자 의욕이 완전히 꺾인다. 집 하나 지으려고 해도 온갖 심의 다 거치느라고 수개월, 수년씩 걸리지 않냐. 규제를 할 때마다 각종 위원회를 만들고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해 계속 제동을 거는데 누가 투자를 하겠나. 시장의 거래비용을 낮춰주는 규제나 안전 관련 규제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하게 해야 한다.
―검사 시절 기업 수사를 많이 했다. 이에 대한 기업들의 불안도 적지 않다.
▷공정한 경쟁에서 반칙을 한 것에 대해 사법처리를 안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검찰의 대기업 수사 때 처음엔 기업 주가가 출렁하다가도 다시 올라가는 건 리스크가 제거된 덕분이 아니겠냐. 기업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건 기업 가치를 올리는 일이다.
―과도한 경영진 처벌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는데.
▷경영진을 직접 사법처리하는 문제에 대해선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을 형사처벌하기보다는 법인에 고액 벌금을 부과하는 등 법인의 형사 책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형사법이 개정돼야 한다. 미국 월가에선 기업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체제)를 강화한 덕분에 최고경영자(CEO)가 망신당하는 식의 수사가 아니어도 조용하고 내실 있는 통제가 되고 있다. 개인을 처벌하기보다 법인을 처벌하면 이후 주주들이 경영진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방식이다. 기업 입장에선 조직 와해 없이 경영진 관련 형사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경영진의 해이 문제에 대해선 주주들이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로 처벌이 가능하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어야 한다. 일자리 창출 해법은.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게 해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고용 보호가 지나치다. 그러니 자꾸 해외로 나가려고만 한다. 미국은 민권법상 위배 조치만 없다면 해고가 자유롭다. 언제든 해고할 수 있되, 해고 과정에서 부당한 차별이 있었다면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을 인정해준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까지 하자는 것은 아니다. 회사 생존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거나, 회사가 수익구조 개편을 위해 기존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부를 만든다거나 할 때는 해고나 조기 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 정도 노동유연성만 확보해도 기업이 훨씬 사업하기 좋아지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지금처럼 나서서 혁신하지 않아도 알아서 혁신이 된다.
―주52시간제에 대해 기업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데.
▷현 정부는 주52시간제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일자리 증가율이 (작년 중소기업 기준) 0.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실패한 정책이다.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52시간 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중소·중견기업은 상속 문제의 어려움도 토로한다. 상속세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많은데.
▷선진국은 상속세든 증여세든 배우자나 자녀 관련 공제도 많고, 장기 분할납부 제도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것들이 부족하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자녀에게 상속할 때 가장 많은 게 주식 상속인데, 상속세를 내려고 주식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상속세 내려고 시장에 주식을 내놓으면 주가가 폭락해서 회사가 안 좋아지고. 악순환이다. 우리도 상속세는 장기 분납이 가능하게 해주는 등 선진국에서 시도하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 상승 등 주택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대한 해법은.
▷이 정부는 수요와 공급에서 수요만 억제하려고 한다. 그러니 양도소득세를 과도하게 부과하는 등 세금 정책만 쓰는 게 아니냐. 그런데 이게 효과가 있었는가. 사람들의 집에 대한 소유욕을 인정하지 않고 억제만 하려고 하면 안 된다. 문제는 공급이다. 지금 하는 식으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만들면 무엇을 하겠는가. 입주해서 불편하지 않게 살려면 10년이 더 걸리는데. 그동안 공급은 되지 않는다. 서울 도심, 핵심지의 용적률을 대폭 풀어줘서 주상복합의 형태로 지어 공급을 늘려야 한다. 미국 뉴욕 맨해튼이나 일본 도쿄 롯폰기 등을 보면 용적률을 2000% 가까이 풀어주며 개발을 유도한다. 우리도 서울 도심 재개발·재건축을 대폭 허용해야 한다.
―집값 상승에 청년의 상실감도 크다.
▷청년들에게는 특히 대출규제를 대폭 완화해줘야 한다. 생애 첫 번째 대출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파격적으로 높여줘도 된다. 청년 세대는 살 날이 많은 세대이고, 일할 날도 많기 때문에 부채상환능력이 훨씬 더 높은 '부도 날 확률이 적은' 세대다. 이들에겐 LTV 규제뿐 아니라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도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이들도 집주인이 되게 해줘야 한다. 이 정부는 맨날 사람들을 임차인으로만 살게 하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인간의 기본 욕구나 시장의 생리를 너무나 모른다.
언론산업 육성이 '언론개혁'…정부와 정치, 개입하면 안돼
당분간 입당않고 민심청취
당선보다 정권교체가 우선
한국의 동맹국은 미국뿐
중국과는 협력적 동반자
대선 후보로 나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는 30년 가까이 검사 생활만 했다는 '한계'가 자주 지적된다. 차기 대선까지는 8개월이 채 안 남은 상황. 이 때문에 그는 '윤석열이 듣습니다'라는 이름의 민생 투어를 진행하고, 공개와 비공개를 넘나들며 많은 전문가들과 만나 견해를 듣는 방식으로 현재 대선 행보를 하고 있다. 그는 이 같은 행보를 이어나갈 방침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국민의힘 소속으로 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진보와 보수, 중도'를 아우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 윤 전 총장의 설명이다. 다만 "정권교체를 어렵게 만들지 않겠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국민의힘에 언제 입당할지가 큰 관심사인데.
▷정권교체를 어렵게 만드는 방식을 취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어떤 딱지를 붙이고 다니면 편한 이야기를 듣는 데 장애가 많다. 가령 지난 17일 광주에 갔는데, 만약 국민의힘 옷을 입고 갔다면 지역민들이 저를 대할 때 태도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정권교체보다 정치개혁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제가 국민의힘 당원이면 그런 말을 과연 하셨을까. 선거공학 얘기만 하지 않았겠나. 또 정당마다 이상은 그럴듯하지만 현실에선 부정적인 부분도 많다. 국민의힘은 당헌에 '자유민주주의'가 있지만 많은 국민은 그 자유를 과거 냉전시대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헌법상 자유민주주의는 국민 전체의 자유여야 한다. 교육의 기회, 포용성, 복지에 대한 배려 없이는 자유를 논할 수 없다.
―앞으로도 입당 없이 민생 행보를 하겠다는 건가.
▷당분간 당적 없이 국민과 스킨십을 하고 싶다.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라 정권교체가 첫째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규제법으로 시끄러운데 본인 입장은.
▷언론개혁은 언론 산업을 육성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언론기관의 불법 행위는 사법적으로 해결하면 된다. 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
―헌법상 자유를 강조했듯 언론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언론은 입법·사법·행정에 이어 '권력 4부'라고 하지 않나. 행정기관에서 발생한 갈등도 법원에서 판단하듯, 언론과 국민의 문제도 법정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원칙만 말씀드린다. 법원에 제소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중재위원회 같은 간략한 전심 절차를 둘 수는 있다. 법정까지 가지 않고 서로 합의하기 위한 절차다. 다만 법정에서 판사에 의해 분쟁을 해결하자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선 가장 기본이다.
―최근 "사드 철회를 주장하려면 레이더를 먼저 철수하라"는 발언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이례적으로 공개 반발했는데.
▷국제 외교 관례나 기본에서 벗어난 것이라 말할 필요조차 없어 말을 안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정부가 모호성을 넘어서 우리 입장을 명확히 하고 협의할 건 협의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정부가 한중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우리나라의 동맹국은 미국 한 곳뿐이다. 미국의 동맹은 여러 나라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동맹은 미국뿐이다. 그리고 동맹 조약을 체결한 이상 동맹국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다른 것 생각할 것 없다. 그게 기본이다. 다만 중국과 일부러 갈등을 빚을 필요는 없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이 문물교류도 했고, 식민지 시절 함께 독립운동을 한 역사도 있다. 협력적 동반자 관계는 될 수 있다. 하지만 동맹은 될 수 없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도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명확하게 가릴 건 가려야 한다. 지금 같은 애매한 관계로는 한중 관계가 제대로 정립될 수가 없다.
[정리 = 박인혜 기자 / 정주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