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조 원 규모의 이번 추경안에서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과 크기는 가장 민감한 이슈라 하겠다. 국민 대다수가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어제 합의는 애당초 불안했다. 앞서 당정 협의에서 재난지원금은 소득 하위 80% 가구에 1인당 25만 원씩 주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지만, 여당 내에서조차 이에 더해 지급 규모를 줄이거나 고소득 캐시백 지원분을 헐어 90% 또는 100%(전 국민)로 하자는 견해가 잇따라 물길이 변화할 조짐이다. 반면 국힘은 피해 본 소상공인 지원 우선 원칙을 앞세운 채 여당의 재난지원금 지급을 현금 살포 포퓰리즘으로 견제는 하되 강력하게 반대는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대선 국면을 맞아 스피커를 키우는 여야의 무수한 대선주자들까지 갑론을박하는 현실을 고려했다면, 두 대표는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제1, 2당의 대표가 이 정도 합의도 못 하냐는 반문은 곱씹어볼 여지가 많다. 선출직 대표는 당의 최고 권한을 가진 리더로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서다. 더러 정국 교착을 뚫고 대결 의제를 풀어야 할 땐 그 이상의 유력한 수단도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다만 대전제는 어디까지나 당내 컨센서스 확보 또는 팔로십 견인일 것이다. 이것이 부족해 보이는 이번 합의가 후폭풍을 일으키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일이 이렇게 된 데 대해 더 되돌아봐야 할 쪽은 취임 한 달을 맞은 30대 0선 이 대표다. 그가 당내 반발에 따라 100분 만에 재난지원금 합의 발표를 재정리하고 나선 것은 좋아 보일 리 없었다. 최근 여가부와 통일부 폐지론을 띄우고 김재원 최고위원의 민주당 대선 경선 역선택을 거든 것도 논란을 부른다. 설익은 화두 제시는 왕왕 참사를 부른다는 점을 이 대표는 알아야 한다. 역선택이 정당정치를 우습게 만드는 것임을 그가 모를 리 없다. 바람직스럽지 않은 행위를 두둔해선 안 된다. 일각에선 작은정부론이 그의 철학인 양 분석하며 대선 쟁점이 될 거란 전망을 하는데, 만일 논쟁한다면 그것을 판별할 잣대라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작은정부론이니 큰정부론이니 하는 허깨비보다 좋은 정부론이라는 실질을 두고 다투길 권고한다.
두 대표의 합의를 둘러싼 잡음이 이틀째 여전한 가운데 송 대표는 국힘이 이 대표의 결단을 뒷받침해주길 바란다며 전 국민 지급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국힘과의 합의 기정사실화로 당내 이견까지 해소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이 대표는 소상공인 지원을 대폭 늘리자는 자당의 원칙에다 민주당의 전 국민 지급 희망을 반영한 정도라고 설명한다. 재정 지출 규모는 한정돼 있건만 서로 아전인수로 풀이하며 하고 싶고 듣기 좋은 이야기는 다 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은 더 절실해졌다.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은 소상공인 피해 지원, 국민 재난지원, 저소득 취약층 추가 지원, 백신 대응 등 중층 패키지로 엮여 있다. 일부에선 4차 대유행이 반영되지 않은 이 안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만날 신중해야 한다는 말만 되뇌며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정치의 무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본래 완벽하기 어려운 정치와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 중 하나는 시간이다. 양당은 국회 정밀 심사와 여·야·정 협의까지 고려한 타협으로 실효 있는 추경안을 다듬어야 한다. 또한 연동형 선거제 손질, 지구당 부활 같은 대표 간 합의를 정치 개혁을 위한 기폭제 삼아 위성정당 창당 등 지난 총선에서 저지른 씻을 수 없는 잘못을 만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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