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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공군 성추행 사망 '합동 수사' 40일… '윗선' 수사는 아직도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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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중간수사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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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합동수사단이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9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피해자 이모 중사 추모소에 추모객이 보낸 국화가 놓여 있다. 성남=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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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과 관련해 22명이 입건되고 10명은 재판에 넘겨졌다. 보직 해임 및 징계까지 포함하면 문책 대상자는 총 38명. 창군 이래 단일 성범죄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다. 조직적 은폐 등 2차 가해와 부실 수사 정황도 확인됐다. 피해자 이모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49일 만인 9일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내놓은 결과물이다. 중간수사 내용이 이 정도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합동수사단의 소환 통보에 세 차례나 불응했던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은 수사 38일이 지난 이날에서야 늑장 출석했다. 그는 범죄 발생부터 사후 처리까지 모든 의혹의 정점에 있는 군 검찰의 수장이다. ‘윗선’에 대한 단죄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사건 발생부터 죽음 이후까지 은폐·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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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9일 국방부 청사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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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표에서도 이 중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각종 비위 행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가해자 장모 중사는 피해자가 군사경찰에 신고하자 “하루종일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라는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성추행 피해 보고를 받은 노 준위를 비롯한 상관들은 “너도 다칠 수 있다” 등 역시 협박에 가까운 회유에 가담했다.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도 허술했다. 신고 접수 후 이 중사는 청원휴가에 들어갔지만 조사 등을 이유로 휴가 기간 대부분을 부대 내 관사에서 보냈다. 장 중사 숙소와는 960m, 2차 가해자 노 준위 숙소와는 불과 30m 떨어진 거리였다. 당시 피해자가 소속된 제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은 사건 발생(3월 2일) 2주가 흐른 같은 달 17일에서야 장 중사를 처음 수사했다.

2차 가해는 5월 18일 피해자가 휴가 복귀 후 옮긴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서 계속됐다. 정보통신대대장 등은 간부들에게 “이 중사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전입 오니 자세히 알려 하지 마라”면서도 그를 부대 내 17개 부서를 돌아다니며 인사하게 했다. 전입자가 사실상 성폭력 피해자라고 대놓고 공지한 셈이다.

사흘 후 이 중사가 목숨을 끊은 뒤에는 사건을 은폐ㆍ왜곡하기에 바빴다. 공군본부 군사경찰은 이성용 당시 공군참모총장에게 사망자가 ‘성추행 피해자’라고 보고했지만, 정작 국방부조사본부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단순 사망사건’으로 기재했다.

국방부도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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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익수 공군 법무실장. 2018년 7월 국방부 '기무사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 특별수사단장으로 일할 당시 모습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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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전면 수사에 착수한 국방부 역시 ‘제 식구 감싸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대표 사례가 전 실장이다. 그는 이날 오전까지 조사 한 번 받지 않았다. 20비행단 검찰이 ‘기소 의견’으로 장 중사 사건을 넘겨받은 시점은 4월 7일. 자신의 관할인 탓인지 그는 50일 넘게 소환을 거부했다.

합동수사단은 지난달 16일 피내사자 신분으로 전 실장의 사무실과 휴대폰을 압수수색했으나, 부실 지휘 여부를 밝혀낼 핵심 절차인 ‘포렌식’은 진행하지 못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포렌식은 참관 동의를 얻지 않으면 추후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어 (전 실장이) 수락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조차 수사 대상자에게 끌려다니고 있다고 자인한 꼴이나 다름없다.

전 실장은 심지어 국방부의 무리한 수사를 이유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사건 이첩을 요청하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지난달 합동수사단 내 검찰단의 세 차례 소환 요구에도 불응하며 버틴 이유다. 전 실장은 이날 오후에서야 뒤늦게 출석했다.

이 전 공군총장이 참고인 수사에 응하지 않은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직 총장이라 군사법원 관할 대상은 아니다”라면서도 “참고인으로 조사할 예정이었지만 이 전 총장 측에서 ‘조사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이 중사 유족은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유족 측은 “서욱 국방부 장관이 강조한 엄정 수사 의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고강도 대책을 촉구했다.

통합 성범죄 대응조직 대책 내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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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혁 국방부 검찰단장이 9일 오전 국방부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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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이날 장관 직속의 통합 성폭력 대응 전담 조직을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미국 국방부 산하 ‘성폭력 예방 대응국(SAPRO)’을 본뜬 건데, 성범죄 수사를 일원화하면 보다 빠른 처리가 가능하고 수사 독립성도 보장할 수 있다는 취지다.

군사법원에 성범죄 전담 재판부를 두고 2심부터는 민간법원으로 재판을 넘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 성범죄 수사 및 재판은 애초에 민간이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비등하자 나온 절충안이지만 성폭력 예방에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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