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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국가의 은폐가 낳은 재난…체르노빌 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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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체르노빌 히스토리© 뉴스1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러시아의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는 1986년 4월26일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생존자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그는 원전 폭발로 방사능 오염수가 흘러 들어간 드네프르 강 중류의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저자는 사고 직후 우크라이나 주민이 겪은 고난과 혼란을 직접 목격했다. 그가 최근에 개방된 문서고 자료를 이용해 치밀하게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신간 '체르노빌 히스토리'는 부제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이 암시하듯 사고의 근본 원인이 소련의 허술한 관리 체계와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오만에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체르노빌 원전은 안전하게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었다. 건설감독부가 사전 주문한 조립 콘크리트 블록은 10분의 1가량이 도착하지 않았다. 도착한 물량의 10% 이상이 불량품이다. 핵연료 저장 탱크, 원자로 터빈실 기둥에도 불량품이 들어갔다.

사고를 미연에 막아낼 기회가 있었지만 묵살 당했다. 1986년 2월 열린 모스크바 공산당대회에서다. 이 대회에는 원전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기술 규정 위반 사항에 대한 보고가 올라왔지만 '5년 내 2배로 증설한다는 계획 발표'에 밀려났다.

1986년 4월26일. 원전이 폭발했지만 정부는 달라지지 않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사고 다음날인 27일 당 중앙위원회에 "화재는 진압했다. 특별한 일은 없다"고 보고했다. 체르노빌 민방위대장은 민방위 당국 상관에게 대형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고했지만 '민심 동요자'라는 면박을 받는다.

소련 정부는 이 상황일 알려지면 공황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주민 대피를 늦추고 공산당의 통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노동절 축하 퍼레이드까지 강행했다. 구 소련의 지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폭발사고 18일이 지나서야 공식적으로 사고 발생을 인정했다.

저자는 "체르노빌 참사는 소련의 원자력 산업뿐만 아니라 소련 체제 전체를 붕괴시킨 기술적 재앙"이라며 "우리가 이미 일어난 재난에서 교훈을 얻지 않으면 새로운 체르노빌식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체르노빌 히스토리/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책과함께/ 2만8000원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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