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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선 유가가 10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 7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분석에 따르면 ‘WTI 가격 100달러’에 베팅하는 콜 옵션 거래 규모가 석 달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2월 초 3만3000계약 선이던 것이 5월 말 기준 8만8000계약으로 뛴 것이다. 미국의 경우 조 바이든 정부의 녹색 성장 방침에 따라 정유업체들이 원유 시추 등 기존 사업 축소 압박을 받고 있는 반면 경제 재개에 따른 수요는 늘어나면서 수급 불균형에 따른 유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오간다. 이 밖에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비톨과 글렌코어, 트라피구라, 골드만삭스 등이 이날 유가가 1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앞다퉈 내놨다. 지난해 중국발 코로나19 바이러스(COVID-19) 대유행과 올해 파리기후협정 본격 출범에 따른 ‘친환경 시대’ 탄소감축 움직임이 겹친 탓이다.
OPEC+(석유수출국기구 OPEC과 러시아 등 비회원 주요 산유국 협의체)는 지난달 1일 정례 회의를 통해 “올해 4월 회의에서 정한 감산 완화 방침을 7월까지 유지하기로 했다”면서 “생산 속도는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OPEC+는 코로나19 대유행 탓에 전 세계가 록다운(봉쇄)에 들어가자 원유 감산을 결정했다. 올해 4월 OPEC+ 회의에서는 5월부터 3개월에 걸쳐 기존에 합의한 감산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원유 생산량을 점진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모하메드 바르킨도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은 지난 5월에 “앞으로 몇 달간 OPEC+ 재고가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OPEC+는 6월 회의에서는 오는 8월 생산량 결정을 일단 미뤄둔 상태다.
한편에선 이른바 ESG(환경·사회·거버넌스)를 중시하는 글로벌 시장 투자 트렌드가 오히려 유가를 끌어올린다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에너지산업 분석업체 우드매킨지는 전 세계 원유 시추 투자액이 지난해 3290억달러에서 올해 3480억달러로 소폭 늘어날 것이며 2024년까지 연간 투자액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책 측면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지난달 초 알래스카 야생동물 서식지인 ‘북극권국립야생보호구역(ANWR)’에서 석유·가스 탐사, 시추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해당 지역은 원유 매장량이 북미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는데 북극곰과 순록 등 야생동물 서식지인 바람에 ‘환경 보호 대 개발 이익’ 논리에 휘말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간 논쟁이 수십 년 이어져왔다.
투자 측면에서는 ESG가 강조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엔진넘버원은 최근 세계 최대 석유기업 엑슨모빌의 이사회 12석 중 3석을 차지했다. 이들은 엑슨모빌이 친환경 에너지 투자에 집중하도록 경영 방향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문래동 철강단지 한 사업장의 구리 원자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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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수요로 인플레 야기한 中
당국 뒤늦게 ‘무관용 원칙’ 적용
다만 친환경 시대라고는 해도 아직까지 화석연료인 원유를 대체할 에너지가 마땅치 않다는 점은 유가 상승 기대감을 키우는 또 다른 배경이다. 오안다 증권의 제프리 할리 연구원은 “최근 인도 내 팬데믹 상황 개선과 미·중·유럽 내 진행 중인 경제 회복세를 감안하면 당장은 유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속에 저점 매수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유가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마지막으로 이란이 공동 핵 합의(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복귀하는 데 기존 예상과 달리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불거진 것도 유가 상승 전망에 힘을 보탠다. 올해 바이든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미국과 이란 양국이 JCPOA에 복귀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고 이에 따라 지난해 3분기(7~9월) 하루 평균 42만 배럴이었던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2022년 1분기(1~3월)에는 150만 배럴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다만 미국과 이란 양국이 JCPOA 복귀 이견을 좁히지 않으면 이란산 원유 공급이 차질을 빚게 된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 발생의 주요 요인이다. 앞서 미국 노동부는 5월 생산자 물가지수(PPI) 상승률이 1년 전 같은 달 대비 6.6%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노동부가 2010년 11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후 가장 높은 수치다. PPI는 생산자 판매 가격에 기반한 물가 지수다. 5월 소비자 물가지수(CPI) 상승률도 12년여 만에 가장 높은 5.0%를 기록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3.5%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전망치를 2.4% 웃도는 수준이다.
다만 원유 가격과 달리 구리와 철광석, 목재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조정 국면에 다가서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올해 원자재 시장 인플레이션을 부추긴 철광석과 구리 값 상승세가 하반기 이후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글로벌 경제 회복을 예상하며 사재기 투기에 나선 중국 측 수요가 주춤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투자자들은 최근 변동성이 커진 기술주와 원자재 상장지수펀드(ETF)·상장지수증권(ETN)을 두고 매매를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중국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 이후 중국 신용 증가세가 늦춰질 것이고 이에 따라 원자재 투기 수요가 줄면서 철광석과 구리값 상승 속도가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재 최대 소비국’ 중국은 올해 1~4월 원유를 비롯해 철광석과 구리에 총 1500억달러(약 168조3150억원)를 썼고 이는 지난해 1~4월 대비 360억달러 늘어난 수치다. 다만 ‘중국 중앙은행’ 격인 인민은행(PBOC)이 지난해 말부터 자산 시장 거품 경계론을 폈고 최근 인프라스트럭처 부문에 흘러드는 자금 줄이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코메르츠방크의 하오 주 신흥시장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당장만 보면 중국 내 부동산·인프라 투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지는 않았다”면서도 “올해 하반기 신용 둔화가 상품 수요에 이어 원자재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하이 소재 마이스틸의 금속 연구부 앨리슨 리 공동 수석도 “그동안 당국이 부동산과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를 통해 시중에 신용을 풀었고 이것이 금속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면서 “신용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끄는 요인이기 때문에 신용이 정점에 달했다는 것은 원자재 가격도 정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정제 구리가 특히 중국 신용 둔화의 영향을 받을 원자재로 꼽혔다. 마이스틸의 리 공동 수석은 “최근 양산 항구에서 정제 구리 프리미엄(웃돈)이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바, 이는 수요가 줄었다는 경고 신호이며 올해 안으로 수입량 역시 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시티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현재 1톤(t)당 9850달러인 구리 값이 올해 9월에 접어들면 1만2200달러를 찍을 수 있다”면서 “신용과 원자재 수요가 정점에 달하는 시기는 몇 달 정도 시차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만 놓고 보면 시세 방향을 두고 이견이 있는 상태다. 철광석 가격도 상승세가 느려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캘러니쉬의 토머스 구티에레즈 연구원은 “아직은 중국의 돈줄 조이기가 초기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철광석 수요도 몇 달 정도 시차를 두고 줄어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직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이 풀린 상태에서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산업 현장이 동시다발적으로 정상화에 접어든 탓에 철광석 선물 값이 사상 최고치를 달렸지만 연말에 이르면 일부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올해 5월을 전후해 구리·철광석 가격은 초강세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5월 12일 철광석 가격은 1t당 237.57달러(중국 칭다오항 수입가)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철금속인 구리의 경우 5월 10일 런던금속거래소에서 현물이 1t당 1만724.50달러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인프라스트럭처 투자와 소비가 활기를 보이면서 원자재 수요가 증가한 반면, 광산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봉쇄와 재개를 반복하는 등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리·철광석 가격이 폭등하자 중국 경제발전 계획 총괄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단속 시그널을 내기 시작했고 당국이 특단의 대책을 냈다. NDRC는 올해 5월 23일 열린 정부 부처 회의에 금속 원자재 업계 최고위 경영진을 불러들인 후 “원자재 독점과 사재기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응할 것”이라는 경고 성명을 발표했다. 당국이 이처럼 각을 세웠다는 점도 앞으로 철광석·구리값의 추가 상승 여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싣는 부분이다. 중국 당국은 지난 4월부터 원자재 투기 경고를 해왔지만 이날 ‘무관용’ 성명은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는 외신 평가가 따른다. 당국이 이같이 나선 것은 원자재 가격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경제 성장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당국은 지난달 중순 원자재 가격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원자재 비축분을 시장에 풀고 국영 기업의 원자재 리스크 관리를 강화한다는 조치를 낸 것이다. 지난달 1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중국 자산감독관리위원회는 자국 국영 기업에 급변하는 원자재 가격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국외 원자재 시장에 대한 익스포저(위험 노출)를 줄일 것을 명령했다. 관련 국영 기업은 앞으로 원자재 선물 포지션과 관련해 거래 계획을 당국에 제출할 것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 당국은 정부가 일시적으로 보유 중인 철강과 알루미늄, 아연 등 각종 원자재 물량을 시장에 풀어 원자재를 필요로 하는 제조업체에 공급할 방침이다. 중국의 이런 조치는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박이 거세지면 실물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제조업이 원자재 원가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면 이것이 다시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중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올해 5월 원자재 시장에선 실물 수요뿐 아니라 투기 수요가 급증한 결과 철광석과 구리 가격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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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철광석 값 급등세는 꺾일 것
블룸버그는 중국이 원자재 가격 통제 강화 조치를 내놓으면서 자국 내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국제 원자재 시장에도 영향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중국 정부의 방침이 알려진 당일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은 일단 하락했다.
다만 중국 당국의 시세 단속 외에 중국 경제 성장세 둔화가 구리·철광석 가격 상승 제한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은 “작년 중국 경제성장률이 1분기에 바닥을 찍고 2분기부터 회복을 시작하면서 올해 4월까지 원자재 가격 상승 1차적 동력이 됐다”면서 “다만 올해 2분기부터는 기저효과가 줄어드는 데 이어 4분기까지 성장률 둔화 국면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바, 철강·비철 수요의 50%를 차지하는 중국 경기 모멘텀이 둔화되는 것은 원자재 시장 입장에서도 눈여겨볼 포인트”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이후 철강·비철금속 가격이 숨고르기에 들어가면서 관련 종목 주가도 하락세다. 월가뿐 아니라 여의도 증권가에서도 원자재 가격이 고점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면서 관련 종목 매수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고 있다. 일례로 ‘철강 맏형’ 포스코 주가는 지난 5월 40만원 선을 돌파했지만 6월 들어 30만원대로 떨어졌다. ‘구리 관련주’로 꼽히는 풍산은 5월에 5만원 선에 다다랐지만 지난달 3만원 선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 밖에 목재 가격도 하락세다. 목재 선물 7월물 가격은 지난달 1ft(피트)당 1009.9달러로 1000달러 선으로 돌아왔다. 앞서 5월 초 1711.2달러를 기록하며 2000달러를 향해가는 것과 반대되는 분위기다. 목재는 지난해 중국발 코로나19 탓에 미국인들이 집에 머물면서 주택 리모델링 수요가 늘어난 여파로 가격이 급등했다. 다만 공급난이 해소되면서 오히려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 사료로도 쓰이는 옥수수 가격 역시 올해 5월 고점 대비 하락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 따르면 옥수수 7월물 가격은 부셸당 670센트 수준에서 거래된다. 지난 5월 7일 775센트로 고점을 찍은 것과 대비된다. 대두(콩) 가격도 5월 고점을 찍고 하락세다.
다만 대두는 친환경시대 바이오연료 수요 증가로 대두유(콩기름)가 각광받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상승 여력이 있다는 업계 전망도 따른다. 옥수수의 경우,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 탓에 자국 내 돼지 3분의 1이 사망한 중국발 사료용 옥수수 수요가 최근 폭증하면서 가격이 뛰었다.
[김인오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0호 (2021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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