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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보안법 비판했다 中에 찍힌 홍콩신문… 폐간호에 시민들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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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反中신문’ 핑궈일보 결국 문닫아

우산혁명 지지 앞장, 中에 ‘미운털’… 작년 홍콩보안법 시행 후 본격 탄압

창업주, 작년 8월 체포돼 실형 선고… 경찰, 17일 압수수색-자산동결 강행

폐간호, 평소 12배 100만부 발행… EU “홍콩보안법, 언론자유 억압”

동아일보

“빗속 고통의 작별” 마지막 신문 23일 홍콩 반중매체 핑궈일보 편집국 직원들이 24일자 마지막 신문 발행을 앞두고 한데 모였다. 직원들 머리 위로 ‘모든 동료들이 고생했다’는 뜻의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가 걸렸다(위쪽 사진). 24일 새벽 홍콩을 비롯한 전세계 취재진이 갓 발행된 핑궈일보의 폐간호를 플래시까지 터뜨리며 집중 촬영하고 있다. 상당수 시민 또한 이 모습을 지켜봤다. 핑궈일보 폐간으로 홍콩의 언론 자유가 대폭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홍콩=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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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밤 11시, 홍콩 신문사 핑궈일보 사옥 앞에 100명이 넘는 시민이 모였다. 이 신문사가 몇 시간 뒤인 24일자 신문 발행을 끝으로 폐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다. ‘진실을 찾는 것이 무슨 죄인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이들도 보였다. 시민들은 내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 폐간호 제작을 앞둔 기자들에게 힘을 보태려는 듯 핑궈일보 사옥을 향해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 응원했다. 화답하듯 건물 안에서 휴대전화 플래시를 창밖으로 흔들어댔다.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국 매체 핑궈일보가 24일자 신문 발행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창간 26년 만이다. 이 신문사는 유명 패션기업 지오다노 창업주 지미 라이가 1995년 6월 20일 세웠다. 핑궈일보의 모회사 넥스트디지털 이사회는 23일 성명을 내고 24일자로 신문 발행을 끝낸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가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인 7월 1일 전에 어떻게든 문을 닫게 만들어 버릴 것이라는 얘기가 외신 보도를 통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핑궈일보는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한 우산혁명(2014년), 홍콩 범죄인을 중국으로 보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이른바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2019년)를 지지했다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눈밖에 났다. 사주 지미 라이가 중국 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해 6월 30일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비판적인 보도를 하고 나서면서 시 주석의 분노를 샀다. 지미 라이는 두 달 뒤인 8월 홍콩 경찰에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불법 집회를 조직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지금은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 홍콩 당국이 홍콩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그가 소유한 핑궈일보의 모회사 넥스트디지털 지분 등 자산 1800만 홍콩달러(약 26억 원)도 동결했다. 자산 동결로 기자들 급여 지급이 막히면서 신문사는 폐간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홍콩 경찰은 앞서 17일 새벽에 500명을 투입해 신문사를 압수수색했다. 같은 날 편집국장 등 5명은 자택에서 체포됐다. 핑궈일보가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홍콩과 중국에 대한 제재를 국제사회에 요구하는 기사를 실었다는 게 체포 사유다. 홍콩보안법상 ‘외국 세력과 결탁’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핑궈일보는 폐간호를 평소보다 12배 많은 100만 부를 찍었다. 1면엔 스마트폰 조명으로 사옥을 비추는 한 시민의 손이 담긴 사진과 함께 ‘빗속 고통의 작별을 고한다’, ‘우리는 핑궈일보를 지지한다’는 제목을 달았다. 폐간호가 시내 곳곳 가판대로 배달된 새벽, 시민들은 신문을 사기 위해 미리 줄을 서고 있었다. 신문은 짧은 시간에 다 팔렸다. 신문을 손에 넣지 못하고 돌아선 시민도 많았다. 한 시민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마지막 신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전날 밤 10시부터 나와 줄을 섰다”며 “10부를 샀다. 친구들에게 나눠줄 것”이라고 했다.

SCMP는 “핑궈일보는 신문 그 이상이었다. 팬들에겐 자유의 수호자였다”고 했다. 이반 초이 홍콩중문대 교수는 “핑궈일보 폐간은 한 시대의 종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유럽연합(EU) 대외관계청은 성명을 내고 “핑궈일보 폐간은 홍콩보안법이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언론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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