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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지수의 서정시대] 개망초 된장국, 찔레꽃 국수… 그가 지은 밥상은 자연의 칸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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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랑 식객'으로 불린 고(故) 임지호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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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식객’ 임지호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가 운영하는 한식당 ‘산당’은 강화도 끝에 있었다. 나지막한 산, 바다와 갯벌, 갈대숲이 있는 그곳에서 임지호는 축지법 쓰듯 땅 위를 스치고 다녔다. 바람이 그의 몸을 들어 옮기듯 뻘 밭 위로 가뿐히 미끄러져 갔다. 정확한 포즈로 과녁 안에 들어왔다 나가는 그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사진기자는 감탄하며 셔터를 눌렀다. 그의 죽음도 그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초여름 어느 새벽, 잠자다 심장마비로 미끄러지듯 떠났다. 살아있을 때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늘 이동 중이었고 노동 중이었다. 그의 유작이 된 다큐멘터리 영화 ‘밥정’에서 내가 특이하게 본 것은 길 위의 노인을 따라 자석처럼 딸려 들어가던 임지호였다. 집으로 들어간 그는 담장 아래 낮은 풀과 이끼를 뜯어 개다리소반에 근사한 상을 차려냈다.

개망초 된장국, 괭이밥 떡, 찔레꽃 국수…. 산 중턱 평상에서 잣솔방울로 국물 낸 칼국수를 깨끗이 비운 지게꾼 노인이 임지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 당신이 밥을 해주고 가는가?” 노인도 아이도 빈자도 부자도 다 그의 밥을 좋아했다. 재벌 회장도, 여배우도 그의 밥상을 받고 눈물을 쏟았다. 자연의 성품과 인간의 슬픔을 헤아리는 임지호의 밥상은 그의 몸을 도구로 이끼, 풀, 돌, 꽃이 연주하는 화해의 칸타타처럼 보였다. 임지호와 나눈 대화 몇 토막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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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모르는 이를 그렇게 스스럼없이 따라가나?

“그분들이 나의 스승이니까. 내 어리석음이 줄어들면 그게 행복이지 않은가. 그걸 비춰주는 거울이 오래된 사람들이다.”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 그렇게….

“어른을 온전히 바라보면, 자연스레 끌려간다. 몸은 한 치의 오차가 없다. 입 구(口) 자를 봐라. 거대한 문이고 법이다. 어른 따라가면 “밥은 먹었냐” 묻는다. 밥상의 도리엔 빈틈이 없다.”

―나물을 무칠 때 손아귀에서 삭삭 바람 소리가 나서 신기했다.

“그게 손맛이다. 심장의 울림을 손의 에너지로 전달하는 게 음식이다.”

―갯벌에선 아이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니던데.

”흙에서 나물을 뜯어낼 때도 머릿속에 다 그림과 질서가 있다. 질서를 알면, 푹푹 빠지는 뻘에서도 나는 다람쥐처럼 뛰어다닌다.”

그해 겨울 나는 강화 바닷가 갯벌을 거닐다 뻘에 빠져 진땀을 흘렸다. 진흙은 엄청난 악력으로 두 발을 잡아당겼다. 나는 장화를 벗어놓고 죽을힘을 다해 모래사장으로 튀었다. 여기저기 처참한 몰골로 처박힌 장화를 보며, 뻘밭을 달리던 임지호를 생각했다. 다람쥐 같은 빠른 발과 벌목꾼처럼 두꺼운 손으로 꽃과 풀과 이끼와 해초를 후드득 걷어내던…. 그의 정체성은 요리사라기보다, 생태 문명 최전선에 있는 ‘캐는 인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가 해녀, 산지게꾼, 나물 뜯는 할머니를 스스럼없이 따라간 건 ‘캐는 인간’들 특유의 자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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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식객'으로 불린 고(故) 임지호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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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이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로 ‘캐는 인간’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디지로그’로 21세기를 명명했던 이 지적 선지자가 왜 ‘선사시대 육체노동을 이어받은 ‘캐는 인간’을 코로나 인류의 미래'로 지명했을까. 나의 질문에 선생은 신나서 말했다.

“심마니와 해녀를 보게. 그들은 자연의 ‘엷은 막’에서 직접 생명을 캐낸다네. 절벽에서 산삼을, 심해에서 전복을 캐지. 350만년 전 채집 인류가 하던 일을, 오직 한국의 심마니와 해녀만 계속하고 있어. 그건 ‘캐는 인간’만의 특별한 율법 덕이라네. 심마니는 산삼을 발견하면 반드시 “심 봤다!” 소리를 질러서 동료 심마니를 불러 모아. 혼자 먹겠다고 슬쩍하면, 죽어. 아웃이지. 떼지어 올라가지만 발견은 혼자 해. 그게 바로 신채집 문명이야. 따로 일하면서 서로 지탱하는 것. 해녀도 혼자 일하잖아. 해녀는 제 눈앞에 전복이 보여도 숨이 모자라면 올라와야 해. 1초만 더 욕심부려도 물숨 마시고 죽어. 그게 바다의 룰이야. 산소통 메고 바다를 착취했으면 초토화됐겠지. 해녀는 자기 숨만큼만 머물다 오는 거야. 자기 몫의 숨값을 아는 것, 그게 ‘캐는 인간’의 지혜라네. 코로나로 만신창이가 된 인류가 이들의 룰을 배운다면 희망이 있네.”

나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연과 밀착했던 ‘캐는 인간’만이 산과 바다의 공포를, 제 손으로 제 숨으로 느끼며 오래 살았다. 임지호는 65세에 죽었다. 짧은 생애였으나, 350만년 채집인의 본능을 마음껏 누렸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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