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역사박물관서 9월까지 세 차례 근대음악 공연·답사
민경찬 한예종 교수와 김종헌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 시기까지 중구 정동은 외교 중심지였다. 또 서양식 학교와 교회가 모인 곳이기도 했다. 정동공원에 남아 있는 구 러시아공사관과 벽돌을 쌓아 올려 지은 정동교회는 당시의 흔적이다.
이처럼 근대 시기 정동을 조명할 때면 보통 건축을 떠올린다. 그런데 정동에서는 다양한 노래가 만들어지고 불리기도 했다. 그중 상당수는 서양 곡에 우리말 가사를 붙인 형태였다. 하지만 정동에서 울려 퍼진 옛 노래는 이제 듣기 쉽지 않다.
중구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23일 만난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정동은 근대음악의 발원지인데, 그동안 정동을 논의할 때 음악이 빠져 있었다"며 "근대 시기 정동 음악의 재미있는 점은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민중이 노래 가사를 만들어 불렀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 교수는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 오는 30일과 다음 달 28일, 9월 29일에 여는 '음악을 통해 본 정동' 행사에서 복원한 악보를 바탕으로 잊힌 옛 노래를 들려준다. 한예종을 졸업한 성악가 4명이 박물관 잔디마당 무대에 올라 한 세기 전 악곡을 부른다.
민 교수는 "근대음악은 대부분이 찬송가나 애국가였다"며 "정동에 외국 공관이 생겨나면서 각국 국가가 연주됐고, 이 국가들이 나중에 찬송가나 독립군가 등으로 불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1896년 만들어진 이른바 '배재학당 애국가'를 보면 현재 애국가와 후렴 가사가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배재학당 애국가 후렴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존하세'이다.
근대건축 연구자인 김종헌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은 "근대 시기 정동을 서양 공사관 거리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우리 삶이나 생활과 분리돼 있지 않았다"며 "정동에 외국 공관이 들어선 이유도 고종이 머문 덕수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정치적으로 한국의 근대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기에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문화는 그렇지 않았다"며 "정동은 서양문화와 전통문화가 뒤섞이고 충돌하는 용광로 같은 곳이었고, 새로운 경향이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민 교수는 "근대음악은 한국인이 능동적으로 서양음악을 받아들인 결과물"이라며 "옛 노래의 가사를 읽어 보면 우리 역사와 선조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생생문화재 사업'의 하나인 이번 행사는 국가, 종교, 학교를 주제로 진행된다. 공연 이후에는 정동의 옛 건축물을 돌아보는 답사가 이어진다.
민 교수는 "코로나19만 사라지면 많은 사람과 함께 옛 노래를 부르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며 "나중에는 합창이나 서양식 군악대인 양악대가 어우러진 공연을 열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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