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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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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 국보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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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불영사 불연·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좌상·송시열 초상은 보물로

아시아경제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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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된 유일한 불교 조각인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이 국보로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이 문화재를 국보, 울진 불영사 불연·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송시열 초상을 보물로 각각 지정했다고 23일 전했다.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협력해 체계적으로 보존 및 활용할 방침이다.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17세기를 대표하는 불교 조각이다. 인조 13년(1635) 조각승 청헌·응원·인균과 제자들이 3m가 넘는 초대형 불상으로 제작했다. 최근 발견된 삼신불 복장유물 등 기록에서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하면서 대웅전에 봉안하려고 제작한 과정과 시기, 후원자, 참여자 등이 밝혀졌다. 관계자는 "벽암 각성(1575~1660)의 주관 아래 의창군 이광(1589~1645) 부부와 서예가 신익성(1588~1644) 등 1320명이 시주자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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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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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불은 법신(法身) 비로자나불, 보신(報身) 노사나불, 화신(化身) 석가노미불을 가리킨다. 화엄사상에 기반한 도상(圖像)으로, 변상도(變相圖)나 사경(寫經) 등에서 종종 보인다. 조각품으로는 화엄사 사례가 유일하다. 17세기 불교사상과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해 2008년 보물로 지정됐다.


삼신불좌상은 화려한 연꽃 대좌(부처가 앉는 자리)와 팔각형 목조대좌에서 결가부좌하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선이 굵게 처리된 조각 솜씨가 중후한 느낌을 준다. 당시 유명했던 조각승 집단인 청헌·응원·인균파가 참여해 각 유파의 조각적 특징도 나타난다. 관계자는 "근엄한 표정의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상은 청헌, 부드러운 얼굴에 작은 눈과 두툼한 눈두덩이 등이 표현된 노사나불상은 응원·인균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17세기에 만들어진 목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조각으로 삼신불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불교 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고 중요하다"며 "예술·조형적 수준도 돋보여 국보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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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불영사 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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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지정된 울진 불영사 불연은 현종 11년(1670) 화원으로 추정되는 광현·성열·덕진 등이 참여해 만든 두 기의 불교 의례용 가마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후기 가마 스무 기 가운데 가장 형태가 온전하다. 불교 목공예의 일종인 불연이 보물로 가치를 인정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관계자는 "불가의 불보살상, 사리, 경전, 불패, 영가 등을 싣고 의식이 거행되는 장소로 모셔오는 데 쓰인 중요한 의식법구"라고 설명했다.


이 문화재는 제작 시기와 동기, 배경, 시주자, 제작자 등이 기록돼 조선 후기 불교 목공예 연구에서 자주 거론된다. 나무로 얽어 만든 둥근 궁륭형 지붕, 네 귀퉁이의 봉황 조각, 난간의 용머리 장식, 가마 전면에 표현된 연꽃·국화·화초 장식 등에서 나타나는 조형미와 조각 솜씨도 일품이다. 관계자는 "불연의 몸체 주렴(구슬 등을 꿰어서 만든 발)에 동경(청동거울)을 매단 최초의 사례"라며 "어둠을 밝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상징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제작 당시의 온전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고, 공예 기술 면에서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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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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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은 효종 7년(1656)에 제작된 불상이다. 당시 만들어진 나한상 가운데 수량과 규모가 가장 크다. 17세기 조각장들을 계승한 조각승들이 승려 벽암 각성의 요청으로 제작했다. 관계자는 "조각승과 불화승 간 협업 체계를 잘 보여준다"고 부연했다. 이 문화재에는 당시 유행한 목조·소조·채식 등이 두루 활용돼 뛰어난 작품성은 물론 재치와 개성까지 드러난다. 관계자는 "송광사를 본산으로 활약했던 조각승들의 활동체계와 제작 태도, 경향 등을 가리켜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송시열 초상은 조선 중기 정치·학문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긴 성리학 대가 송시열(1607∼1689)을 그린 18세기 초상화다. 상단에 '尤庵宋先生 七十四歲 眞(우암 송선생 칠십사세 초상)'이란 화제가 적혀 있어 송시열의 일흔네 살 때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충북 제천 황강영당에 300년 넘게 봉안돼 그간의 내력도 분명하다. 2012년 충북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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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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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송시열은 회색 사방건(四方巾·귀퉁이가 네모난 직사각형 모자)을 쓰고 검은색으로 깃과 소맷부리의 가장자리를 두른 회색 심의(深衣)를 입은 채 두 손을 맞잡아 소매 속에 넣은 반신상으로 묘사됐다. 주름이 깊게 파인 이마·눈가와 희끗희끗한 콧수염·턱수염 등이 굴곡진 삶을 대변한다. 관계자는 "송시열의 초상화 서른 점 가운데 진재해(1691∼1769) 등 당대 최고 초상화가가 그렸다고 추정될 만큼 우수한 사례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유려하면서도 단정한 필선과 정교한 채색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구현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송시열 초상'과 견주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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