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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저절로 이준석이 나온 게 아니다  [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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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공정한 역량평가 걸림돌 된 시대
30대 야당대표 당선 계기로
단순세대교체 아닌 나이불문사회가 돼야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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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큼 나이를 민감하게 따지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나이에 따라 인간관계는 선배, 친구, 후배로 분류되고, 언어는 존대어와 반말로 갈린다. 한 사람의 이미지, 예상되는 역량, 기대되는 역할 모두 주민번호 첫 두 자리의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다.

나이를 과도하게 따지는 문화와 관행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풍성하고 다양한 관계 형성을 제약하는 것은 물론, 인적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것을 어렵게 함으로써 경제적인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그리고 연령에 민감한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 비용은 점점 더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과 기술의 빠른 변화로 말미암아 연공 혹은 연령으로 생산성을 가늠하기는 더욱 힘들게 되었고, 노동인구의 고령화와 정년연장은 나이에 따른 피라미드식 직무구조와 연공형 임금제도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나이를 근간으로 한 경직적 노동시장의 폐해는 모든 세대의 몫이다. 평생직장이 보장되고 나이든 선배의 오늘이 신입직원의 미래였던 과거와는 달리, 일자리의 불확실성과 노동시장 이동성이 높아진 오늘날의 여건에서는 청년들이 연공형의 직무·임금구조를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나이를 따지는 제도와 문화는 고령자에 대한 연령차별을 낳고, 법적 정년을 넘긴 고령인력이 계속해서 일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나이를 따지지 않는 사회로의 전환은 이제 미루어두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전환을 이룰 수 있을까? 여기서는 노동시장 제도와 관련된 두 가지 조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잠재력을 포함한 개인의 역량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도입하는 것이다. 능력이나 공헌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모호할수록 나이처럼 잘 드러나는 특성에 기대어 그릇된 인사 결정을 할 수 있다. 정확한 평가에 기초한 개선된 정보는 연령차별을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노동시장 차별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둘째는 평가의 결과가 실제로 인사와 보상에 반영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평가 및 인사시스템의 투명성을 높이고, 건강한 경쟁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시장의 평판이나 경쟁의 압력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경우, 인사권자는 주어진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 대신 본인이 선호하는 사람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스포츠 분야의 사례는 이러한 조건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선수의 실력이 기록이나 경기 결과에 뚜렷하게 드러나고, 이 정보가 널리 공유되며, 팀 간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경기력 이외의 요인이 선수의 선발이나 보상의 결정에 개입될 여지는 줄어든다. 이러한 여건에서는 무명의 어린 선수라도 승리를 위해 기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나이 자체가 팀 공헌도가 높은 베테랑의 은퇴를 강제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헌정사상 최초로 30대의 제1야당 대표가 탄생한 것도 이러한 조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랜 기간 빈번한 공적인 노출을 통해 후보의 성향이나 역량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면, 당대표 선출이 국민과 당원의 투표라고 하는 투명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외부의 경쟁압력이 낮아서 모험적인 변화의 필요성이 적었다면, 이렇듯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을까?

필자는 이준석 대표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젊은 리더들이 청년세대를 대변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본인의 능력과 성과로 평가받기를 희망한다. 이는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서서 나이를 따지지 않는 사회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한국일보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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