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김수영의 마지막 13년 삶터 걸으니 “종이로만 만난 시인, 숨결을 느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수영 100년, 한겨레 벗과 걷다]

아내 김현경씨, 한겨레 후원회원에

김수영 시인의 삶과 문학 들려줘

“김 시인, 술먹고 나태한 모습 못봐

못질 경험 없지만 양계장 직접 제작”

서울 마포 구수동 옛집 터 방문도


한겨레

고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왼쪽에서 세번째)씨가 19일 오전 김 시인의 옛집 터인 서울 마포구 구수동 영풍아파트에서 ‘김수영 100년, 한겨레 벗과 걷다’ 행사에 참가한 후원회원들에게 당시 자택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동네가 김(수영) 시인과 제가 양계를 하며 마지막 13년간을 살았던 구수동입니다. 여기로 이사 오기 전에는 성북동의 한옥에 세들어 살았는데, 새소리 들리고 폭포도 있고 아주 꿈같은 집이었어요. 그런데 거기 별장지기가 약간 귀가 먹어서 24시간 라디오를 큰소리로 틀어놓고 있는 바람에 소음에 굉장히 민감한 김 시인이 못 견뎌서 결국 나오게 된 거죠.”

시인 김수영(1921~1968)의 부인 김현경 여사가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콘텐츠센터 대강당 단상에 올랐다. ‘김수영 100년, 한겨레 벗과 걷다’ 행사에 참가한 <한겨레> 후원회원들에게 김수영 시인의 문학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행사에는 후원회원들 가운데 신청을 한 이들과 <한겨레> 창간 33돌 기획 ‘거대한 100년, 김수영’ 기획위원들인 김수이·김응교·맹문재 교수, 나희덕 시인 등이 참가했다. 노혜경·박수연·임동확 등 ‘김수영연구회’ 회원들은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행사에 동참했다.

“마침 마포종점 근처에 외딴집이 있다고 해서 이쪽으로 이사 오게 됐죠. 이 건물 자리를 비롯해, 마포종점에서부터 집에 오기까지 주변이 다 배추밭이었어요.”

김현경 여사는 시장에서 사온 병아리 11마리로 시작해 750마리로 규모가 커지기까지 10년 가까이 양계를 했던 사연이며 김수영 시인과 연애하던 젊은 시절 이야기, 김수영 시인의 평소 생활습관과 대인관계, 1968년 6월15일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에 치여 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둔 마지막 날의 이야기까지를 놀라운 기억력과 생생한 묘사로 들려주었다.

“김 시인은 정말 공붓벌레였어요. 그냥 노는 걸 못 봤지요. 하이데거 전집을 읽으면서는 ‘야, 나하고 똑같은 생각이야!’라면서 연신 감탄하고는 했지요. 번역도 그냥 아무렇게나 하지 않고 정말 정성스럽게 했어요. 사전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소공동 국립도서관으로 가서 확인하고는 했지요. 그래서 거기 사서와도 친했어요. ‘국립도서관’이라는 시도 썼지요.”

김현경 여사는 문학평론가 염무웅·김현을 대동하고 구수동 집으로 놀러온 고은 시인을 크게 꾸짖었던 일이며 술병과 안주를 들고 찾아온 소설가 박순녀와 전병순을 역시 호되게 나무랐던 일화를 들려주며 “김 시인이 술 먹고 떠들고 나태해지고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이 명동에 자주 나가서 술을 먹었다고 일화들에는 나오지만, 그 양반이 제일 혐오한 게 명동이었어요. 김 시인은 아무하고나 술을 먹지도 않았어요. 명동에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나갔는데, 답답하니까 젊은 사람들하고 떠들려고 나갔던 거예요.”

사고가 났던 1968년 6월15일에 김수영은 번역 고료를 받으러 시내에 나간 김에 명동에서 술을 마셨는데,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소설가 이병주를 통해 고급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자고 청하자 ‘난 그놈하고는 술 안 먹는다’며 거절하고는 이병주가 자신의 외제 승용차로 데려다주겠다는 것도 뿌리치고 버스로 귀가하다가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김현경 여사는 “술 먹는 자리인데 그냥 가면 좋았을걸. 어지간하면 좀 타협도 하고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고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씨가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콘텐츠센터 강당에서 김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 시간 남짓한 강연이 끝난 뒤 일행은 그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김수영의 구수동 옛집 터를 답사했다. 지금의 영풍아파트 102동 자리가 집터이고, 아파트 정문 앞 신수중학교 버스정류장이 시인이 사고를 당했던 장소다. 일행은 김현경 여사가 지난 2월 맹문재 교수와 대담하면서 직접 그려준 가옥 구조도 복사본을 들고 김현경 여사의 현장 설명을 들었다. “못질 한 번 안 해본 김 시인이 나랑 같이 철망으로 양계장을 만들었고, 양계 책을 사서 나달나달해질 정도로 충실히 읽으며 양계 공부를 했다”고 김현경 여사는 설명했다. 일행은 시인이 버스에 치였던 사고 장소에서 마지막 날들에 관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답사를 마쳤다.

후원회원으로 답사에 참여한 대학생 김도희씨는 “그동안 종이 위 평면에 납작하게 쓰인 김수영만 알았는데, 오늘에서야 김수영이 입체로 녹아 눈앞에 펼쳐졌다. 김현경 선생님 손을 잡고 옛집 터며 김수영 시인 돌아가신 곳을 걷는데, 제 손에 전해오는 김현경 선생님 체온과 맥박에서 젊은 날의 김수영과 김현경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역시 후원회원인 퇴직교사 유정열씨는 “시인이 떠난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건강한 모습으로 그 시절을, 그 작품들을 남들에게 얘기하시는 김현경 여사의 모습이 퍽 행복해 보였다. 시인의 옛집이 보존됐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게 너무 아쉬웠다”고 말했다.

김영희 <한겨레> 콘텐츠총괄은 “후원회원을 모집하면서 국장단과 만남을 비롯해 여러 행사를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김수영 탄생 100년 기획을 하면서 우선 후원회원들에게 참여 기회를 드리게 되어 아쉬움을 조금 덜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오는 9월과 10월에도 김수영이 포로 생활을 했던 부산과 성북구 옛집을 대상으로 역시 후원회원 초청 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33살 한겨레 프로젝트▶‘주식 후원’으로 한겨레의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