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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96 : '감'에서 '앎'으로… 우리말 어감 사전 - 안상순
공원에 벚꽃이 만개했어요./만발했어요. 차이를 아시나요? 마술/마법/요술, 이건 또 서로 어떻게 다른 걸까요? 채소랑 야채는요? 헤엄과 수영은 또 어떻고요? 개가 헤엄을 친다고는 할 수 있지만, 개가 수영을 한다고는 하지 않죠. 간섭/참견, 거만/오만/교만, 안일하다/안이하다, 오해/곡해, 사고/사유/사색, 심문하다/신문하다, 고맙다/감사하다, 기억/추억 …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아예 모를 때도 있고, 용케 잘 구별해서 쓰고는 있지만 정확한 뜻은 알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죠. 수많은 언어 중에 우리가 제일 자신 있는 언어, 한국어이지만 막상 비슷한 말이 '비슷할 뿐 같지는 않은' 이유가 정확히 뭔지 따져 물으면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2021년 6월 20일 북적북적에서 소개하는 책은 『우리말 어감 사전 (안상순 지음, 유유 펴냄)』입니다. 지난 5월에 나온 신간입니다. 부제는 '말의 속뜻을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이에요. 이 책을 쓴 안상순 님은 평생 사전을 만들어 온 분입니다. 안상순 님은 1985년부터 30년 넘게 국어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책 『우리말 어감 사전』을 쓰고 교정까지 본 뒤, 출간을 앞두고 세상을 떴습니다.)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30년 넘게 사전을 만들면서도 미처 건드리지 못한 우리말 유의어를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지요.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독자에게는, 갖고 있던 암묵적 지식을 명시적 지식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전하고,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독자에게는 유의어라는 허들을 조금이나마 쉽게 넘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말 어감 사전』, '들어가는 말' 中
'암묵적 지식', 소위 '감'을 '명시적 지식', '앎'으로 바꾸고자 했다고 하죠.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비슷한 말의 미묘한 차이를 속뜻과 함께 알게 됩니다.
'간섭'과 '참견'을 잠시 예로 들어볼까요. 둘 다 '타자에 대한 부당하거나 공연한 개입'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고, 같은 뜻으로 쓰일 때도 있습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참견 마세요' 처럼요. 하지만 '부모의 간섭은(o) 참견은(?)아이를 망칠 수 있다' 의 경우, 참견 보다는 간섭이 자연스럽습니다. 간섭은 우월적 지위가 있는 경우, 참견은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 경우에 쓰이기 때문이죠. 특히, '고려는 오랫동안 몽고의 내정 간섭을(o)/참견을(x) 받았다' 처럼, 한 집단/국가가 미치는 영향력이나 강제력에 대해 '간섭'이라 할 수는 있지만 '참견'이라고는- '내정 참견'- 하기 어렵습니다. '빛은 소리나 물결처럼 간섭(o),참견(x) 현상을 일으킨다.' 라고 쓸 때도 '참견'은 쓸 수 없고요.
'기억'과 '추억'도 그렇습니다. 기억은 과거와 현재의 일을 되살리는 데 모두 쓰일 수 있지만, 추억은 과거에만 해당됩니다. 또 추억은 '그리움'의 정서가 깔려 있는 만큼, 그리워할 수 없는 비극적 불행에는 '추억'이란 말을 쓸 수 없죠. 다른 말과 결합할 때 역시, '기억력/ 추억력(x), 기억 상실증/추억 상실증(x), 기억이/추억이(x) 가물가물하다. 추억이/ 기억이(x) 깃든 곳' 처럼 두 단어는 쓰임이 다릅니다.
사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속뜻은 이렇게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고, 다른 말과 결합할 때는 어떤지 비교해 보면 차이가 도드라집니다. 저자인 안상순 님은 선행 연구를 참고하고 말뭉치를 활용해 신중하게 정리해 이 책을 내놓으며, '언어의 의미란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해도 끝내 궁극을 드러내지 않는 불가지의 영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말과 글을 찾아다니며 풀이를 붙이는 일을 했지만 비슷한 말의 속뜻을 변별하고 정리해서 기록하는 이 작업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이 '언어의 규범서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제목처럼 정말 '사전'이지만, 독자가 이 책을 교재나 규범서처럼 딱딱하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 궁금한 게 많은 호기심쟁이, 우리말을 더 잘 쓰고 싶은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책입니다. 읽고 나면, 이 책에 나오지 않은 다른 유의어도 그 미묘한 차이가 궁금해집니다. '감'이 '앎'이 되고, 그 '앎'으로 다시 '감'이 솟아나 더 알고 싶어지는 선순환이랄까요.
** 유유 출판사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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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현 기자(fortu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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