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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의 눈으로 고발한 '기이한 세계' 실리콘밸리...신간 '언캐니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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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언캐니 밸리

애나 위너 지음·송예슬 옮김 | 카라칼 | 404쪽 | 1만8500원

경향신문

장류진은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판교 IT(정보기술) 회사원의 삶을 묘사했다.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이지만, 그곳은 당연히 천국이 아니다. 밝은 미래와 눈앞의 부조리가 뒤섞인 그곳에서 청년들은 저마다 방식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했다.

세계 IT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의 삶은 어떨까. 한때 출판사 편집자였고, 이후 스타트업 직원이었으며, 결국 작가가 된 애나 위너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실리콘밸리라는 ‘기이한 세계’를 묘사한다. 외부인에게는 자유롭고 최첨단이며 전망 좋아 보이는 그곳 문화가 실은 능력주의, 성공에 대한 집착, 맹목적인 효율성 추구, 옳고 그름에 대한 무감각, 무엇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어울리지 않는 여성혐오로 가득 차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언캐니 밸리>는 <일의 기쁨과 슬픔>보다 한 단계 어둡다.

책을 좋아하던 위너는 뉴욕의 출판계에 종사했다. 한국 출판산업이 그러하듯, 미국 출판산업 역시 성장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일의 방식은 낡았고 업무는 과중했으며 임금도 적었다. 젊은 직원들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한 산업의 쇠락 징조다. 위너 역시 하루도 빠짐없이 대학원 진학을 꿈꾸다가 전자책 스타트업의 구직 광고를 접했다. 젊고 야심만만한 20대 남성 3명이 공동창업한 곳이었다. IT 기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격식 없고 자유분방하면서도 깔끔한 면접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전자책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정작 책에 대해선 별 애정이 없어 보인다는 점은 문제였다. CEO의 발표 자료에는 ‘헤밍웨이’가 ‘헴밍웨이’로 잘못 표기돼 있었다. 위너는 스스로를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가교 혹은 번역자로 여겼겠으나, 창업자들에게 ‘올드 미디어 출신 여성’은 구색 맞추기에 가까웠다. 금세 처지를 깨달은 위너는 샌프란시스코의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본격적인 실리콘밸리 사람이 된 것이다.

이곳에서도 위너는 중심 인물이 아니었다. 개발자가 아닌 고객지원 담당자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지위였다. 위너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요소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이 스타트업은 고객 회사가 수집한 소비자 정보 분석을 수익모델로 삼았다. 소비자가 특정 기업의 어떤 제품에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 파악해 이를 의뢰 기업에 제공하는 것이다. 스타트업 직원은 의뢰 기업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데이트, 쇼핑, 여행, 성생활 등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가공해 또 다른 회사에 판매하지 않으면 된다는 정도의 윤리의식만 갖추고 있었다. 6만5000달러의 연봉은 위너의 윤리의식을 마비시키기 충분했다. 입사 두 달 만에 위너의 연봉은 1만달러 더 인상됐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가 있었지만, 위너를 비롯한 스타트업의 누구도 자신들이 ‘감시 경제’에 복무한다고 여기지 못했다.

함께 열정적으로 일하던 동료가 처우 개선을 요구한 즉시 해고됐지만, 누구도 CEO에게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20대 남성 개발자들이 주류인 이곳에서 위너는 단체 채팅방에서는 ‘비치’(bitch)라는 비속어를 쓰면 안 된다는 상식을 끈질기게 주장해야 했다.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의 기괴한 문화에 지친 위너는 오픈소스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개발자들을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조금 더 자유롭고 느슨한 문화가 스며든 스타트업이었다. 일은 여유로웠으나 위너는 여전히 일에 만족하지 못했다. 10만달러 연봉을 받았지만 위너는 여전히 ‘외부인’이었다.

특정 직군을 잠시 체험한 뒤 호들갑스럽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캐니 밸리>는 그렇지 않다. 개인의 경험담을 넘어, 이 시대 기업문화의 일면을 통찰력 있게 조명한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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