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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5·18 무명열사 신원 찾았다…행방불명자 신동남 씨(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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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오인한 생존자 가족이 장례치러…생존자 나타나자 행불자로 망월묘역 안장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9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무명열사'의 유골을 채취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41년간 이름 없이 5·18 묘역에 묻혀있던 무명 열사 1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15일 5·18 무명 열사 묘역에 안치된 5기의 유골 가운데 1기(묘 4-90)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무명 열사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총상을 입고 숨진 신동남(당시 30세) 씨로 확인됐다.

신씨는 5월 20일 불상의 장소에서 총에 맞고 적십자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중상을 입었던 신씨는 다음날 사망했고, 시신은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가 시민수습대책위원회에 의해 전남도청으로 옮겨졌다.

이때 연락 두절된 아들을 찾아 나선 이금영 씨의 어머니가 신씨의 시신을 아들로 착각하고, 장례 절차를 진행했다.

시신은 5·18 구묘역인 망월묘역에 안장됐다.

그러나 한 달도 되지 않아 죽은 줄 알았던 이금영 씨의 생존 사실이 확인되면서 시신은 이름을 모르는 무명열사가 됐다.

신씨를 포함한 무명열사는 모두 11기였는데 2001년 구묘역에서 현재의 국립 5·18 민주묘지로 이장하면서 뼛조각을 채취, DNA 분석을 통해 6기의 신원을 확인한 바 있다.

지난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조사위도 첫 현장 일정으로 행불자 찾기에 나섰다.

그동안 유전자 검사로 시료가 소진된 3기의 뼈소각을 다시 채취해 DNA를 분석했고, 신씨의 가족과 연관성을 밝혀냈다.

신씨의 가족들은 "병원에서 시신이 사라졌다"며 행방불명자로 신청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식 행불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신씨처럼 행방불명자로 신고했더라도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한 사례는 158명에 이른다.

5·18 보상이 시작된 1990년부터 2015년까지 7차례에 걸쳐 행방불명자로 242명(중복 신고 포함 448건)이 신고됐지만, 공식 인정된 행불자는 84명에 불과하다.

조사위 관계자는 "행방불명자의 소재를 확인하는 우선 조사과제로 5기의 신원미상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려 했다"며 "단 한 사람의 행방불명자 소재를 확인하는 것이 다른 행방불명자 전체에 대한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집중했다"고 밝혔다.

한편 신씨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국립 5·18 민주묘지에 남아있는 무명열사는 4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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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9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무명열사'의 유골을 채취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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