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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보수 불모지’서 2030 호응… ‘이준석 효과’, 지역주의도 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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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일정 첫날 광주 참사현장 방문

시민 “비전 제시하면 당 떠나서 지지”

새 대표 국민의힘 지지율 첫 40% 육박

호남 16.3%… 2주일 새 2배가량 올라

세대교체 넘어서 지역주의 균열 조짐

지도부와 대전현충원 참배로 시작

“보수정당으로 보훈 문제 처리 미흡

반성·개선하겠다는 의지 담아 방문”

광주선 ‘철거참사’ 재발방지책 촉구

“5·18 이후 세대로서 아픈 역사 공감”

의원총회서 90도 인사 박수·환호성

박병석 의장 “李 취임은 역대급 사건”

세계일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4일 광주 동구청에 마련된 철거건물 붕괴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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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2030 세대는 민주화와 공정 중 어떤 문제에 더 호응할까요?”

헌정 사상 첫 30대 당수 시대를 연 ‘이준석 돌풍’이 정치권 세대교체를 넘어 한국 정치의 견고한 지역주의 벽에도 균열을 내고 있다. 영·호남 대다수 유권자는 청년과 노인, 노동자와 기업가가 각자의 사회경제적 격차에도 대동단결해 특정 정당을 지지해왔다. 하지만 보수정당 불모지였던 호남에서 2030세대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메시지에 호응하며 정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14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새 간판을 내건 이후 처음 40%에 육박했다. 이준석 바람이 일어난 6월 초반부터 정당 지지율이 상승 곡선을 그리며 전 지역에서 올랐다. 국민의힘(39.1%)과 민주당(29.2%) 간 격차는 9.9%포인트에 달했다.

특히 호남의 변화는 이준석 돌풍이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두드러진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5월 31일∼6월 4일 전국 만 18세 이상 25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7일 공개한 6월 1주차 조사에서 국민의힘 호남지역 지지율은 17.2%로 그 전주에 비해 2배가량 올랐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날 발표된 조사에서도 호남지역 지지율은 16.3%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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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지난달 20일 출마 선언 이후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하며 바람을 일으켰다. 지난달 28일 전대 컷오프에서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예고했고, 6월 들어 ‘이준석 대세론’을 굳혔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호남을 향한 ‘서진 전략’을 펴고 이 대표가 이를 계승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대표는 이날 철거 건물 붕괴 참사가 발생한 광주광역시를 방문했다. 광주 북구 심남섭(43)씨는 “비전을 제시하고 희망을 준다면 이념과 당을 떠나 지지할 생각”이라며 “‘보수 성지’ 대구가 이 대표에게 힘을 실으며 변화를 보여준 것처럼 호남도 내년 대선에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선주자 지형도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 내 소장파인 박용진 의원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권 주자 3위에 오른 것에 이어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도 범야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5위권에 처음 진입했다. 새 바람을 기대하는 민심을 타고 새 인물이 부상할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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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대표(오른쪽)가 14일 대전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에서 희생자 유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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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유족 만난 이준석 “10년 넘도록 해결 못한 점 사과”

국민의힘 전당대회 기간 내내 돌풍을 일으키며 끝내 당권을 거머쥔 이준석 대표가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을 소화한 14일 광폭 행보를 보였다. 이 대표는 이날 새벽 서울을 출발해 대전을 찍고 광주를 거쳐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행보 하나하나가 지금까지 보인 모습과 마찬가지로 ‘파격’의 연속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5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전행 버스에 올랐다. 그는 김기현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과 서해수호 희생 장병 묘역 등을 참배했다. 그는 방명록에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은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통상 정치권 인사들의 취임 후 첫 방문지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이지만 이 대표는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등으로 희생된 장병들이 잠든 대전현충원을 찾는 파격을 택했다. 그는 당대표가 되기 이틀 전 국방부 앞에서 열린 천안함 생존 장병과 유가족들의 시위 현장을 찾아가 눈물을 흘린 바 있다.

대전현충원을 찾은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기자들에게 “(그간 국민의힘이) 보수정당으로서 안보에 대한 언급은 많이 했지만, 보훈 문제나 여러 사건·사고의 처리에 관해서 적극적이지 못했던 면이 있다”며 “그런 부분을 상당히 반성하면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대전현충원을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날도 천안함 희생 장병의 유족과 만난 자리에서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아이들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 달라’는 말을 들은 뒤 눈시울을 붉혔다. 이 대표는 천안함 유족들에게 “(천안함 사건이) 10년이 넘었는데도 (해결을 못해) 마음 아프게 해드린 것을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이 대표는 이후 철거건물 붕괴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광주로 향했다. 보수정당 대표가 공식 일정 첫날부터 광주를 찾은 것 역시 파격 행보로 평가받는다. 이 대표는 광주 동구청에 마련된 학동4구역 철거현장 붕괴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5·18 이후 태어난 첫 세대의 대표로서 광주의 아픈 역사에 공감한다”며 “광주시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용섭 광주시장과 만나서는 사고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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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이준석 신임 당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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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온 이 대표는 취임 후 첫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다양한 생각이 공존할 수 있는 그릇이 돼야 하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우리의 언어가 돼야 한다”며 “오늘부터 우리가 행하는 파격은 새로움을 넘어 새로운 여의도의 표준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또 공유자전거·공유킥보드 등 퍼스널 모빌리티(개인용 이동수단) 산업에 대해 언급하며 “젊은 세대에겐 이미 친숙하지만, 주류 정치인들에게 외면받았던 논제들을 적극 선점하고 다루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난 12일 첫 국회 출근길에 백팩을 멘 채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나타나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대표는 처음 참석한 의원총회에서는 “우리 당 중심의 야권 대통합이 가시화하고 있다”며 “정말 풍성한 대선주자군과 문재인정부에 맞설 빅텐트를 치는 게 제 소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을 “당 중추”라고 부르며 협조와 지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발언을 마친 뒤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을 땐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이 대표는 “국가적 위기상황인 만큼 야당도 협조하겠다”며 여야 협치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박 의장은 “이 대표의 취임은 한국 정당사에 한 획을 긋는 역대급 사건”이라고 덕담을 건넨 뒤 “(국회가) 국민을 중심으로 하는 협치와 소통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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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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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앞세대 밀어내는 코드로 등장” “대선·지방선거도 2030 바람 불 것”

헌정 사상 첫 30대 당대표로 선출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연일 파격적 행보를 보이면서 정치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일보는 14일 전문가들에게 이 대표 당선이 정치권 세대교체·대권지형도 변화·이념과 지역 갈등 등 우리 사회 정치적 쟁점 사안들에 미칠 영향에 관해 물어봤다.

정치권 전반의 세대교체 가능성에 대해선 대체로 긍정적인 전망이 나타났다. 박상헌 정치평론가는 “문재인정부 들어서 전성시대를 맞았던 586 주류세대가 퇴행적 모습을 보여준 가운데 이 대표가 앞세대를 밀어내는 하나의 코드로 등장한 것”이라며 ‘이준석 현상’을 기점으로 한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봤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전당대회에서 결국 당심이 민심을 반영하는 쪽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도 2030세대 후보의 바람이 불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 대표 당선이 당의 전략적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김관옥 교수는 “중진들에게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야권 지지자들이 ‘그나마 젊은 사람을 앞세우면 주목하지 않겠나’라는 차선책으로 이준석을 선택한 것이다. (이 대표 당선은) 세대교체가 아닌 정권교체 수단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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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대표가 지난 13일 따릉이를 타고 국회의사당역에서 국회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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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지형 변화 가능성에 대해선 판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면서도 그 해석은 분분했다. 이 평론가는 “당장 보이지 않는 젊은 주자들이 세대교체 바람을 타고 나타날 수 있다”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 외에 유력후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이나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얘기했던 ‘70년대생 경제전문가’ 등이 뛰어들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민주당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이 대표가 (대선 주자들의) ‘토론배틀’을 한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후보들이 정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검증대를 얼마나 통과하느냐에 따라 (판이)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상헌 평론가의 경우 “대선후보 관리에 대한 일관된 메시지로 오히려 (대권지형의) 혼선을 줄였다”고 평가했다.

청년 대표 탄생이 이념과 지역 갈등 해소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용인대 교양학부 최창렬 교수는 “‘87체제’가 너무 오래 지속한 가운데 그 균열이 이준석을 통해 표출된 것”이라며 “호남에 이준석이 자꾸 찾아가면 (이념·지역 구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법이 있나.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다음 총선 때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갈등이 해소 국면으로 갈 것이라 봤다.

반면 김 교수는 “이준석은 반진보의 성격이 강한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정신을 갖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호남과 맞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갈등 해소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이 대표 당선이 이념·지역 갈등을 해결할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었다. 박창환 평론가는 “이준석 현상 전에도 국민의당의 등장이라든지,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영남에서 승리한 것이라든지 갈등 해소 가능성은 항상 존재했다. 다만 정치권이 이런 벽을 다 뚫지 못했다”며 “가능성은 언제든지 존재하고 점점 커질 수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현미·곽은산 기자, 광주=한현묵 기자, 김주영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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