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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World & Now] "미국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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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18년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교수가 공저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죽는가(How Democracies Die)'의 열성 독자다. 책을 수십 권씩 사서 주위에 나눠주기도 했다.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 우월주의 폭동을 보며 미국의 위기를 절감했고, 이 책을 읽고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서 독재의 그림자를 본 저자들은 정당하게 선출된 권력자들이 민주적 절차를 점진적으로 무력화시키고, 결국 민주주의 체제마저 전복되는 여러 나라의 사례를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 중 상당 부분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는 국내적으로 극단주의 발호를 억제하고 민주주의 문화와 시스템을 재건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긴다. 인프라스트럭처 법안을 힘으로 밀어붙이기를 주저하는 것도, 상원의 필리버스터 제도를 폐기하자는 유혹을 견디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대외적으로는 '민주주의 대(對) 권위주의' 국가 간 대결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주요 7개국(G7) 공동성명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구를 예상보다 높은 수위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유럽을 종횡무진 누비며 던지고 있는 '미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는 상징적이다.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미국이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는 점을 반성하는 한편, 자신이 이를 되돌려 미국이 주도하는 안정적 세계 질서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사실 새로울 것은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쓰인 미국 외교의 정통 교과서를 다시 펼쳐 들었을 뿐이다.

미국은 특별한 소명을 지닌 국가이며 민주주의·시장경제·도덕성에 기반해 전 세계의 리더가 돼야 한다는 '미국 예외주의'로의 회귀이자 '단극 질서'의 유지 선언이다. 그럼에도 다수 국가들의 공명(共鳴)을 빠르게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트럼프 시대의 기저효과에다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에 대한 공포심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 개인이 주는 안정감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가 주도하는 안정적 세계 질서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바이든 외교의 진짜 실력은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적성국과의 일대일 외교에서 증명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유럽 순방의 백미는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푸틴 대통령을 핀란드 헬싱키에서 처음 만나기까지 1년6개월이 걸렸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불과 5개월 만에 대면 회담으로 정면 돌파에 나선다. 미·러가 과연 전략적 공존의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까 제네바에 시선이 쏠린다. 이번 회담은 향후 미·중 외교의 방향성을 가늠할 풍향계라는 의미도 크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honzul@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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