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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 마스크 벗고 여행… 아프리카-중남미는 ‘백신 사막지대’[글로벌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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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접종 6개월… 지구촌 양극화

총 22억2000만 회분 맞아… 선진국만의 잔치

남아서 걱정 vs 없어서 걱정… 집단면역은 언제?

고개 든 ‘백신 패권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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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여유 9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내 명소인 유리 피라미드 인근에서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벗고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인구의 42%가 1회 이상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프랑스는 이날부터 외국인 관광객 입국도 허용했다. 파리=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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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8일 당시 91세 영국 여성 마거릿 키넌 씨가 세계 최초로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이후 6개월이 흘렀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미국, 서유럽, 이스라엘 등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던진 채 여행, 모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나라들의 정부 또한 3차 접종(부스터샷)까지 준비하며 최대한의 방역 효과를 거두려 애쓰고 있다.

반면 접종률이 낮은 아프리카, 중남미 저개발국에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하다. 백신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나마 확보한 백신도 미 화이자와 모더나,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등 선진국 백신에 비해 예방률이 낮다고 평가받는 중국과 러시아산이 대부분이다. 반년간의 접종을 통해 접종률이 높은 일부 선진국 사회는 정상화를 눈앞에 뒀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백신 사막지대(vaccine desert)’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코로나19 종식은 물론이고 세계 경제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극심한 접종 디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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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8일까지 전 세계에서 22억2000만 회분의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 세계 인구의 12%(약 9억 명)가 최소 1회의 접종을 마쳤다는 의미다. 그중 절반은 2차 접종까지 완료했다.

백신은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다른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이달 2∼8일 1주일간 전 세계 평균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약 40만 명으로 4월 말(80만 명)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특히 세계 최대 감염국이지만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백신을 맞은 미국에서는 올해 1월 초 하루 약 30만 명에 달하던 일일 신규 확진자가 최근 1만 명대로 급감했다.

백신은 중증 환자 및 사망자 수도 대폭 감소시켰다. 최근 1주일간 코로나19로 인한 평균 일일 사망자 수는 1만 명 정도로 하루 1만5000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1월 말보다 급감했다. 영국 공중보건국(PHE)은 최근 보고서에서 “백신 접종으로 지난달 13일까지 영국의 60세 이상 성인 1만3200명의 사망을 막을 수 있었다”고 추산했다.

문제는 국가별 접종 양극화가 심해 이 효과를 극소수 선진국만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8일 기준 이스라엘은 930만 인구 중 63%가 최소 1회 이상 백신을 맞았다. 캐나다(63%), 영국(60%),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42%), 미국(51%) 등도 높은 편이다.

반면 누적 확진자 171만 명으로 아프리카 최대 감염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지난달 22일 기준 전 인구의 불과 약 1%(약 64만 명)만이 1차 접종을 마쳤다.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2억 명) 역시 전체 인구 대비 접종률이 1%에 못 미친다.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7일 “백신 접종 6개월 동안 고소득 국가에서 전 세계 백신 접종의 44%가 이뤄졌지만 저소득 국가는 0.4%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대륙별 격차도 뚜렷하다. 북미 지역은 인구의 39%가 최소 1회 이상의 접종을 완료했다. 유럽(34%)도 높은 편이다. 반면 아프리카는 2%에 불과하다. 8일까지 1회 이상 접종률이 1%에도 못 미치는 나라는 25개국으로 대다수가 아프리카 국가다. 차드, 부르키나파소 등 아프리카 최빈국, 중남미 아이티 등은 최근까지만 해도 접종 횟수 자체가 ‘0’이었다.

● 백신 남는 선진국 ‘폐기’ vs 빈국 ‘2023년까지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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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로 농부 찾아가 접종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회복 중인 선진국과 달리 저개발국에서는 백신 접종이 더뎌 우려를 낳고 있다. 5일 인도 잠무카슈미르 스리나가르에서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감염국인 인도는 4, 5월 한때 일일 신규 확진자가 40만 명대로 치솟았고 아직도 확산세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스리나가르=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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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이 남아도는 선진국에서는 유통기한 만료 등으로 백신 폐기를 해야 하는 반면에 저개발국에서는 2023년까지 최소 2년간 백신 부족에 시달릴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이는 다른 의약품에 비해 비교적 유통기한이 짧은 코로나19 백신 자체의 특성과 연관이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화이자 백신은 영하 60∼90도 냉동상태에서 6개월 보관이 가능하고 해동 후에는 냉장 상태에서 최대 5일 안에 사용해야 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백신이 부족한 저개발국이 백신을 폐기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아프리카 말라위는 유통기한 만료로 코백스를 통해 공급받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만 회분을 폐기해야 했다. WHO와 공동으로 코백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백신연맹 ‘가비(GAVI)’도 “일반 백신의 유통기한이 3년인데 코로나19 백신은 제조사들이 유통기한을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설정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오클라호마, 아칸소 등 상당수 주들이 이달 말 유효기간이 끝나는 얀센 백신 수십만 회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필요한 곳에 재분배하지 못하고 폐기할 처지에 몰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부 주에서 유효 기간이 임박한 백신을 다른 나라와 공유하려 했지만 법적 한계, 주로 저개발국인 수혜 국가의 부실한 행정 능력 등으로 유통기간이 끝나기 전 신속히 대규모 접종을 마칠 수 없어 제안이 반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2140만 회 분량의 얀센 백신이 미 정부에 납품됐지만 실제 사용된 분량은 절반에 불과하다. 결국 미 식품의약국(FDA)은 10일 대량 폐기 위기에 몰린 얀센 백신의 유통기한을 기존 3개월에서 4개월 반으로 연장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유통기한 연장도 검토하고 있다. 화이자 또한 최근 “백신의 냉장유통 기한이 기존 5일이 아닌 최대 31일까지 연장 가능하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백신 불평등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4월 보고서에서 “85개 개발도상국은 2023년까지도 백신 접근성이 해소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미 듀크대 연구팀 역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92개국은 2023년 이후에나 전 인구의 60%가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진국 내에서도 접종 격차가 뚜렷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시시피(35%) 앨라배마(36%) 루이지애나(37%) 등 미 남동부 주요 주의 접종률이 50개 주 전체 평균(51%)을 밑돌고 있다.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뉴욕 등 백신 접종률 상위 22개 주는 모두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했다. 접종률이 낮은 지역은 대부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으며 블루칼라 백인이 많다. 이런 지역의 접종률을 대폭 끌어올리지 못하면 바이든 미 대통령이 공언한 ‘독립기념일인 다음 달 4일까지 미 성인의 70% 접종 달성’ 목표가 어려울 수 있다.

● 변이 바이러스로 집단면역 기준 상향

아프리카 등 남반구 지역이 겨울에 접어들었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는 점은 코로나19 재유행에 대한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7일 WHO는 “최근 한 주간 아프리카지역 14개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다. 이 중 8개 국가에서는 확진자 수가 30% 급증했다”고 밝혔다.

대만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신규 확진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방역 모범국’으로 불렸다. 하지만 4월부터 매일 수백 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백신 접종 속도 또한 더뎌 국가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백신 접종이 더딘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 역시 최근 신규 확진자가 급증하자 봉쇄령을 다시 발령했다. 세계 3위 감염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주요국에서도 신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 기존 바이러스보다 확산 속도가 빠른 변이 바이러스도 속속 등장하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에 코로나19 집단면역을 달성하기 위한 백신 접종률의 기준치 또한 높아졌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초기만 해도 의료 전문가들은 전체 인구의 60∼70% 백신 접종을 집단면역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장기화하고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하자 이 수치를 80∼90%로 높이는 분위기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집단면역이 이뤄지려면 전 인구의 75∼90%가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밝혔다. 존슨앤드존슨의 앨릭스 고스키 최고경영자(CEO)는 9일 “전 세계의 집단면역을 위해 향후 수년간 인류가 매년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현재 백신 생산 능력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에 전 세계가 집단면역에 도달할 때까지 코로나19 백신 제조에 관한 지식재산권을 일시 면제해 생산량을 늘리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지지부진하다.

● 백신 볼모로 한 패권 경쟁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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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의 패권 경쟁 또한 백신 수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거대 제약사를 보유한 미국과 서유럽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 또한 자체 백신을 이용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중국 시노팜 백신은 10일 현재 55개국, 시노백 백신은 30개국, 칸시노 백신은 4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중국산 백신은 현재까지 세계 80여 개국에 3억5000만 회분이 공급됐다. 중국은 세계 곳곳에서 반중 감정이 고조되는 와중에도 자국산 백신 지원을 앞세워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백신 역시 남미, 동남아, 동유럽 등 44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동유럽에서는 자국 내 반발, EU 보건당국의 미승인 등으로 러시아 백신을 쓰지 않는 나라가 많다. 3월 슬로바키아에서는 러시아산 백신 도입 때문에 총리가 사퇴했다.

미국이 최근 코백스를 통해 92개 저소득 국가와 아프리카에 백신을 기부하기 위해 5억 회분의 화이자 백신을 구매하기로 발표한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일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민주주의의 무기고였듯 전 세계를 위한 백신 무기고가 되겠다”며 저개발국 지원 의사를 강조했다.

패권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백신 불평등을 해소해야 자국과 전 세계 성장에 이롭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미 기업연구소(AEI)는 최근 보고서에서 “저개발국에 백신을 지원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포인트 오른다”고 추산했다. 액수로 환산하면 4700억 달러(약 523조 원)에 달한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 교수는 “제약업은 원래 자본 집약적 산업이며 기존에도 존재하던 세계 의료 양극화가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한 번 확인됐을 뿐”이라고 진단했다.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모두 자국 정부로부터 수조 원의 돈을 지원받아 백신 조기 개발에 성공했으며 이 정도의 돈을 투입할 수 있는 나라는 극소수라는 지적이다. 그는 “21세기에도 누구는 다이어트에 돈을 쓰고 누구는 굶어 죽는다”며 선진국 지원, 코백스 체제 등으로도 당분간 백신 불평등을 해소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구가인 comedy9@donga.com·김예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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