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글로벌 법인세를 최소 15%로 정하는데 합의했다. 본사 소재지와 상관없이 이익이 발생하는 나라에 세금을 납부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기업들의 조세회피 가능성을 줄이고 각국의 법인세 인하 경쟁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등 합의를 주도한 나라들은 “조세제도 개혁을 위한 역사적 합의”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100년동안 이어진 조세원칙의 틀을 바꿔야하고 일부 국가들의 반발도 있어 최종 합의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과 유럽연합(EU), 월드뱅크의 임원들이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글로벌 법인세를 최소 15% 이상 부과하는 안에 합의했다. 런던|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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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 G7은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재무장관 회의를 열고 조세개혁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합의안의 중심내용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법인세를 최소 15%로 정하는 것이다. 각국의 기업 유치 경쟁이 심화되면서 지난 40년동안 법인세율은 1981년 40%대에서 2020년 23%대까지 크게 떨어졌다. 미국의 경우 조 바이든 행정부는 현행 21%인 법인세율을 28%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좋은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는 반대론에 부딪혀있다. 이날 합의는 최소 세율을 정해서 심한 경쟁을 막자는 데 있다.
다른 하나는 10% 이상의 이익을 거두는 기업의 경우 수익의 20%는 이익이 발생하는 나라에서 세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본사 소재지와 상관없이 전세계를 무대로 이익을 내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세금을 누가 어떻게 징수할 것이냐는 지난 몇년간 세계의 중요한 화두였다. 1920년대부터 유지된 현행 조세원칙에 따르면 법인이 있는 곳에서만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에 본사 법인을 세우는 식으로 세금을 회피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의‘빅테크’ 기업들이 엄청난 수익을 거두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럽은 ‘디지털세’를 도입을 선언하기도 했다. 프랑스가 2019년 7월 제일 먼저 디지털세 징수를 선언했고, 유럽연합(EU)도 최종안을 다듬어 2023년부터 발효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에 반발해 유럽에서 넘어오는 명품들에 추가관세를 붙이겠다고 발표하면서 디지털세 논란은 미국과 유럽의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번에 합의된 안은 거대 기업들의 조세회피 가능성을 낮추면서, 디지털 거래 시대에 맞춰 세계 각국의 세수를 정당하게 늘리자는 데 원칙을 두고 있다.
이번 합의는 G7 국가들이 2013년 글로벌 법인세 관련 논의를 시작한 지 8년만에 나왔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미국과 전세계의 중산층, 노동자들에게 공정성을 보장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특히 “다자주의의 부활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충돌했던 트럼프 정부와 달리 바이든 정부가 세계 여러 나라와 손잡고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은 당초 법인세율을 21%로 주장했으나 합의과정에서 낮췄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하게 기업들이 적절한 곳에서 올바른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도 “우리는 디지털 대기업에 대한 공정한 과세와 최소한의 법인세를 위해 수년간 싸워왔다”며 “15%는 출발점에 불과하고 더 높은 비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실행된다면 한 세기 동안의 국제법인세제를 뒤집게 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적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율(12.5%)로 구글의 유럽 본부를 유치하는 등 ‘법인세 수익모델’을 구축해온 아일랜드의 패스컬 도너휴 재무장관은 “아일랜드 법인세수의 5분의 1이 사라질 수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뉴욕타임스는 “주요국 재무장관들은 아일랜드가 협정에 참여하도록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계획이지만, 중국이 참여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전했다. 중국은 법인세율이 16.5%인 홍콩을 통해 외국 기업투자 유치 덕을 보고 있다.
징수 대상이 되는 기업의 정의도 불명확하다. 다국적 회계법인인 KPMG 워싱턴의 마날 코윈은 “이 협정이 어떤 기업에 적용될 것인지 의문이 남아있다”며 “기업들의 이윤을 측정하는 방법과 사업부문 세분화에 대한 명확한 정의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세 도입을 두고도 미국은 “즉시 철폐”를 요구했으나, 유럽은 “새 합의안이 마련되는 대로 없애는 방안”에 무게를 두는 등 G7 국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새 합의안은 다음주 11일~13일 열리는 G7정상회의에서 승인을 거친 뒤, 7월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이끄는 137개국의 최종 동의를 받아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적용될 수 있다.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등 합의안이 실행되면 가장 큰영향을 받게 될 기업들은 우선 “환영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블룸버그는 “완전한 이행에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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