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 부사관 극단선택 파장
추행 신고 석달 만에 가해자 영장
폰 확보도 뒷북, 총체적 부실대응
여군 부친 “청원해야만 관심 갖나”
서욱 국방부 장관이 2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공군 여군 A중사가 안치된 영안실을 찾아 조문하고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A중사는 지난달 22일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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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부사관이 선임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공군이 최초 이 사건을 국방부에 단순 변사(變死)로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2일 군에 따르면 공군은 지난달 22일 성추행 피해자 A중사가 숨진 채 발견된 후 이튿날 국방부 조사본부에 이 사건을 단순 변사로 보고했다. 공군은 A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한 것 외에 성추행 피해를 입은 사실, 가해자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점 등에 대해서는 보고하지 않았다.
공군은 또 사건 초기 가해자의 휴대폰을 확보하지도 않는 등 부실 대응한 것으로 파악됐다. 2일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숨진 A중사는 지난 3월 5일 공군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에서 최초 피해자 조사를 받았다. 공군은 열흘 뒤 가해자에 대해 첫 조사를 했는데, 불구속 상태로 수사하며 가해자의 휴대전화를 확보하지도 않았다. 휴대전화는 지난달 31일에야 확보됐는데, 이는 피해 발생 석 달 뒤이고, A중사 사망 9일 만이다.
피해자는 상담 과정에서 숨지기 한 달여 전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군 법무실이 이 의원 측에 제출한 문건에 따르면 공군은 피해자 조사를 벌인 3월 5일 당시 상담관을 배석하도록 했으나,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가해자는 3월 17일 다른 부대로 파견 조처됐는데, 이는 피해 발생 2주 지난 시점이었다.
특히 A중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했는데도 피해와 관련한 상담이 종료된 정황도 있다. A중사는 20비행단 소속 민간인 성고충 전문상담관과 22차례 상담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상담 중이던 지난 4월 15일 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4월 30일 성폭력상담소는 “자살 징후 없었으며, 상태가 호전됐다”고 진단하고 상담을 종료했다.
A중사의 빈소가 사망 12일째 되도록 차려지지 못한 가운데 서욱 국방부 장관이 2일 시신이 안치된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을 방문했다. 서 장관은 유족들에게 “A중사와 같은 딸을 둔 아버지다. 딸을 돌본다는 마음으로 낱낱이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A중사의 아버지는 “청원을 해야만 장관이 오시는 상황이 정말 유감스럽다”며 “이후에 어떻게 상황이 진전되는지 계속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국방부 군 검찰단은 이날 B중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A중사의 성추행 신고가 이뤄진 지 약 석 달 만에 이뤄진 영장 청구다. B중사는 이날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서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압송됐다. 전투복 차림의 B중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호송 차량에서 내린 뒤 법정으로 향했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군 검찰에 따르면 B중사는 지난 3월 저녁 회식에 참석했다 귀가하는 차량 뒷자리에서 A중사를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중사는 부대에 정식 신고했지만, B중사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부대를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부대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 A중사 유족 측은 즉각적인 가해자·피해자 분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부대 상관들의 조직적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이 사건을 알렸다. 공군은 성추행 사건을 규명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방부는 수사 주체를 공군에서 국방부로 이관했다.
공군 관계자에 따르면 군사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성추행 사건 당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음성이 담긴 차량 내 블랙박스 파일을 확보했다. 해당 파일은 피해자가 직접 군사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원석·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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