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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차기 대선 경쟁

대권주자로 찍고 돌아서면 후회하는 김종인...왜 만나고 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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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된 박근혜·문재인 두고 "국민에 사과해야"
자기 말 안 들은 안철수는 늘 평가절하
현재는 이재명·윤석열·김동연 등 지목
한국일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임기가 끝난 김종인 위원장이 4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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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순간이 도래했다."

최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정치인 김종인이 만든 표현은 북한 선전매체까지 인용할 정도의 유행어가 됐다. 김 전 위원장은 이 표현을 자신이 생각하기에 대권에 가까운, 당대의 과제를 해결할 '운명'을 맞이한 인물에게 붙였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 자신이 이 당 저 당 옮겨 가며 정파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을 '별'의 자리로 올려 놓는 측면도 있다.

과거에 그를 거친 이들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점찍은 정치인 혹은 명사들은 일정 시간 '대망론'으로 주목받게 되고, 더 나아가 정치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관계의 끝이 좋지 못한 양상도 보인다. 특히 대통령까지 오르는 데 역할을 한 셈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잠시 손을 잡았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훗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어쩌면 나는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다"라고까지 했다.

알려지지 않은 선택, 정동영

한국일보

2007년 11월 24일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의 출마 기자회견에 김종인 전 의원이 함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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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은 제5공화국 시절 전두환의 국가보안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했고 군사정부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 창당 발기인에 이름을 올린 뒤 민정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1987년 헌법 개정 때 소위 '경제민주화' 조항을 설계하고, 노태우 정부에선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들어가 재벌과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에 경제 정책 면에서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됐다.

이 때문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정계 복귀 가능성이 수시로 언급돼 왔다.

정작 김종인이 정계로 복귀한 당은 2004년 열린우리당 분당 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동참하며 잔류한 '새천년민주당'이었다.

하지만 2007년 17대 대선 때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지지했다. 당시 정 후보가 표방한 '정통경제' 역시 김종인의 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상대인 이명박 후보의 기세가 워낙 강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은 듯, 대통합민주신당에는 직접 합류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6년 정동영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으로 갔고, 민주당에 김종인이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되자, 정 전 의원은 그의 국보위 전력 등을 거론하며 "야당의 대표이자 얼굴이 될 분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준비 많이 했다"던 박근혜 향해 "동네 건달 같았다"

한국일보

2012년 9월 23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새누리당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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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은 2011년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에 비대위원으로 참가했고, 자연스레 이듬해인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해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밀어넣는 데 성공했다.

당시 그는 박 후보를 향해 "한나라당이 완전히 추락해 침체기에 빠졌을 때 비대위를 만들어 자기 주도하에 당을 장악하는 실력을 보여줬다"며 "나름대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준비를 많이 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당시 경제민주화는 대선 공약에 머물렀을 뿐 새 정부의 정책에 포함되지 못했다. 김종인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대선 직전에 박근혜 후보와 결별했다.

2020년 그가 공개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를 보면 대선을 앞두고 박 후보가 측근 9명을 대동하고 그를 만나 '동네 건달'처럼 협박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다고 적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는 표면상으론 의리를 지키며 비판의 수위를 조절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16년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초청을 받고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되면서 박 전 대통령과 대립하게 됐다.

총선 이기고도 앙금 쌓인 문재인과의 관계

한국일보

2016년 1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의원과 문재인 대표가 손을 잡고 있다. 오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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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종인을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면서 "삼고초려로 모셨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영입에 공을 들였다. 김 전 위원장도 "진정성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공천 과정에서 이해찬, 정청래 등 당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했고 본인은 비례대표로 공천하면서 당내 친노·친문 계열로부터 '셀프 공천'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 때 문 전 대표가 김 전 위원장을 전폭 지원하면서, 기존의 지도부 역할을 맡던 비대위는 해체되고 김 전 위원장은 당대표 자리까지 맡게 됐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2020년 회고록에서 당시 문 전 대표가 "전후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나 몰라라 입을 닫은 채 은근히 그 사태를 즐기는 태도를 취했다"며 "인간적인 배신감마저 느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2016년 총선에서 정치권 안팎의 예상을 깨고 원내 1당을 차지하며 이기긴 했지만, 당내 '투톱'인 문재인 전 대표와 김 전 위원장 사이의 갈등설은 끊이지 않고 제기됐다.

김 전 위원장은 같은 해 8월 전당대회 때 대표직을 물러나면서 "일개 계파(친문 세력)가 (당) 전체를 그냥 다 쓸어 잡는 선거 결과가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듬해인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김 전 위원장은 민주당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문 전 대표를 향해 "최근 변화 양상을 보니 싹수가 노랗다"고 비판했다.

두 사람의 갈등이 표면화한 것은 의원내각제 개헌을 원하는 김 전 위원장의 요구를 문재인 전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김 전 위원장은 대선을 앞둔 그해 3월 민주당을 탈당했다.

네 번 만나 네 번 헤어진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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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8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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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전에 '별의 순간이 왔다'고 한 인물이다.

둘은 안철수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던 2011년 '청춘 콘서트'에 함께 참석했을 때 만났는데, 이때 안 원장이 정치 멘토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안철수 대표와 김 전 위원장이 손을 잡았다고 할 만한 기간은 매우 짧았다.

2011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물러나고 보궐선거가 열리자 안철수 원장은 시장 출마 가능성을 엿봤다. 김 전 위원장은 "국회의원부터 시작하라"고 만류했지만 안 원장이 듣지 않아 일단 소원한 관계가 됐다.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이던 안철수가 탈당을 고민하며 그의 의견을 구했다. 이때도 김 전 위원장은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힘을 합쳐 분란을 수습하라며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만류했다.

결과적으로 안 의원이 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그의 빈 자리를 메운 것은 김종인 본인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안 의원을 "자기가 불리하니까 밖으로 나가버리는 사람"이라고 비판했고 안 의원도 김 전 위원장을 "낡은 정치인"이라고 공격했다.

둘의 인연은 2017년 대선 직전 다시 만들어졌는데, 김 전 위원장이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대립하며 그 대체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연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개혁공동정부 구상'에 합의했다.

하지만 안 후보가 대선에서 패하면서 이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그해 그는 "안철수는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혹평했다.

네 번째 만남은 올해 4·7 재보궐선거였다. 안철수 대표가 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은 김 전 위원장이 야권 단일후보 지위를 수성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이 낸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중심으로 단일화가 이뤄지면서 잠시 연대가 복원됐지만, 보궐선거 직후 당을 떠난 김 전 위원장이 "3자 간 대결로도 우리가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해 안 대표의 기여를 평가 절하했다.

대선 나오지 못한 인물들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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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왼쪽)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020년 7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글로벌외교안보포럼 창립 세미나에서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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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이 지목한다고 해서 무조건 대권주자 자리에 오르는 건 아니다. 불발로 끝난 이들도 여럿 있다.

그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물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보다도 이전인 2007년에 '별의 순간'이 왔다고 지목하며 대선 출마를 종용한 인물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다. 정 전 총장은 얼마 안 가 불출마를 선언했고 훗날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가 됐다.

2017년 대선 전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안희정 충남지사를 차례대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모두 사실상 문재인 후보에 대한 대항마로 여긴 것이다. 반 전 총장은 한때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치고 올라가기도 했고, 안 지사도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추격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대권 도전에서 멀어졌다.

현재 국민의힘을 떠난 김 전 위원장은 여전히 당과 무관하게 유력한 정치인들의 운명을 점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했고,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에겐 '흙수저 스토리'를 부여하며 "경제 대통령으로서 대선 주자로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선 이재명 경기지사를 지목해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이 당 저 당 옮겨가며 선거를 하는 것은 실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양대 정당에서 정치기술자로서 초대를 받는 것"이라며 "지조나 신념보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곳으로 정계를 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부정적으로 보면 일관된 방향이 없는 정치 기능인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정치 현상을 보는 나름의 관점과 통찰력이 있고, 그 상황을 바꾸는 힘도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한국의 현실 정치가 보수와 진보의 구분에 의미가 없고, 가치 지향적인 정당정치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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