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늦게 알아서 미안해. 꼭 바꿔줄게" 정인이 엄마 자처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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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정인이가 숨진 뒤 세상은 분노했습니다. 아동 학대 신고와 입양 관리의 허점이 드러났고, 정인이 이름을 딴 법도 만들어졌습니다. 검찰이 장 씨에게 아동학대 치사 혐의만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가 살인죄를 추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7개월간 가장 앞에서 정인이 이름을 외쳤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엄마들입니다. 육아에 출근에 하루하루 보내기도 바쁜 이들은 남은 가족이 없는 정인이를 위해 '정인이 엄마'를 자처했습니다. JTBC 밀착카메라팀은 지난 13일, 엄마들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관련 리포트
[밀착카메라] "정인아 미안해, 바꿀게”…행동 나선 '엄마들'(5.13)
https://news.jtbc.joins.com/html/174/NB12004174.html
# 출근 전 법원 앞에서 피켓을 든 엄마
두 아이 엄마 박제이 씨와 만난 시각은 새벽 6시 40분쯤입니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곳은 박 씨의 회사가 아닌 남부지방법원이었습니다. 법원 앞에서 익숙한 듯 피켓을 든 박 씨는 40분간 1인 시위를 했습니다. 2주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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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가 둘째랑 동갑이라 그랬는지 계속 생각이 났어요.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도 잠을 재울 때도 계속이요. 아이가 잘 때 부모가 한 번을 토닥여주긴 했을까, 그때쯤 아이들이 이가 나서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데 짜증을 부리진 않았을까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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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알아서 미안해. 꼭 바꿔줄게.”
법원 앞에선 또 다른 엄마가 피켓을 들고 있었습니다. 가족 모르게 나온 거라며 조심스러워했지만, 밖으로 나온 마음은 박 씨와 똑같았습니다. 잠시 인사를 나눈 박 씨는 출근하기 위해 다시 지하철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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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학대 신고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엔 죽어야 했던 것에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또 다른 정인이 같은 아동 학대 아이들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서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수목장 주소를 알고 뛰어왔던 엄마
정인이가 잠들어있는 곳은 경기도 양평의 수목장입니다. 정인이 사진 앞 나무는 싱그럽게 자라고 있고 추모 공간에는 여전히 많은 인형과 장난감이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관리가 될 수 있었던 건 세 아이 엄마 최수진 씨의 공이 큽니다. 최 씨는 이 수목장에 처음으로 왔던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작년 11월 19일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오후 늦게 주소를 알고 정신없이 뛰어왔어요. 그땐 계단을 거쳐서 정인이 나무를 못 보고 지나갔어요. 그만큼 여기가 너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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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게 많이 고민했었어요 사실은. 제가 어떤 권리나 의무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도 정인이를 위해서 그 마음을 가장 잘 보전하면서 유용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정인이처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정인이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로 했죠.”
“정인이 사건으로 엄마들이 시위도 하고 서명운동도 했잖아요. 사실 이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일어났을 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진다면 굳이 엄마들이 집을 비우고 나와서 목소리 내고 나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 31개월 아이 엄마가 진정서를 쓰는 이유
31개월 아이를 키우는 김현주 씨는 100통 넘는 진정서를 썼습니다. 정인이에게 쓴 것도 많지만, 정인이를 계기로 알게 된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펜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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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들려오는 아동학대 사건이 더는 남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아기들을 밥도 제대로 안 먹이거나 자기가 몸이 힘들다며 뭐라 했다고 하고. 만약에 제 아이였다고 생각하면…. 남의 모르는 아이이긴 하지만 제 아이같이 마음이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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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성인이 아닌 아이는 같은 힘으로 때려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폭력이 아니고, 순간적인 감정으로 벌어지는 실수도 아니고 살인 행위라는 것을요.”
#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공의 역할"
사건 직후부터 공론화를 주도했던 시민단체는 7개월간 수사와 재판을 지켜보며 정인이 보호자를 자처했습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무엇보다 공공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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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홍보나 캠페인을 보면 주변의 관심과 신고가 중요하다는 말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 협회 회원들처럼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죄책감을 갖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역할은 상당히 한계가 있습니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거나 피해 아동을 보호하도록 체계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관은 정부입니다. 이제부터라도 피해 아동을 조기에 발굴하고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시설과 인력을 점검하고 제대로 보호해야 합니다.”
이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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