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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적물 김일성 회고록 판매 금지해달라" 신청, 법원은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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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14일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중앙일보

한국 출판사인 '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이 『세기와 더불어 항일회고록 세트』(전 8권)를 지난 1일 정식 출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서적은 북한 조선노동당 출판사가 1992~1997년 출간한 『세기와 더불어』와 그 내용이 똑같다. [사진 교보문고]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박병태 수석부장판사)는 이날 "채권자들의 사건 신청은 이유 없으므로 기각한다"고 밝혔다.



법원 "인격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



소송을 제기한 측은 "김일성은 유엔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반인도범죄자인데, 이 서적은 김일성 일가를 미화한 책으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책"이라며 "그런데도 이 서적을 일반인에게 배포하는 건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인간 존엄성 및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법원은 "헌법 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와 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의 내용에서 채권자들이 주장하는 인격권이나 구체적인 사법상의 권리가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헌법 제10조 제1문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부분에서도 이 사건 행위의 금지를 구할 수 있는 사법상 권리가 곧바로 부여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채권자들의 주장대로 이 사건 서적의 내용은 채권자들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고, 이 사건 서적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행위가 채권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끝으로 법원은 "채권자들은 주로 채권자 자신보다 대한민국 국민 일반의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음을 이유로 이 사건 행위의 금지를 요청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인격권은 전속적 권리로서 채권자들이 임의로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이와 같은 신청을 할 수는 없다"며 "따라서 채권자들의 주장 및 제출 자료만으로 이 사건 신청을 구할 피보전권리나 그 보전의 필요성이 소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전날 항고장 제출…납북 인사 직계후손도 소송"



이에 대해 소송대리인을 맡은 도태우 변호사는 "법원이 사회적으로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막중한 사안에서 너무나 시야를 좁게 해서 왜곡된 결정을 내린 것이라 생각한다"며 "전날 이미 항고장을 제출했고, 오늘 항고이유서도 접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 변호사는 "항고이유서에 해당 저작물이 인격권을 침해하며, 소송인 측이 사법적으로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소명할 것"이라며 "예를 들면 신청인 중 한 사람은 납북된 인사의 직계후손이다. 이 책은 납치범죄 전쟁범죄자를 거짓 미화하는 책인데, 그런 거짓된 책이 합법에 가장을 띄고 돌아다니는 것은 납북자 직계 후손의 인격적인 명예나 정신적인 온전성을 침해한다고 썼다"고 밝혔다.

또 "김일성 회고록은 전체주의적 저작물이라 다른 비판적 저작물과의 공존이 허용되는 성격이 아니"라며 "전체주의적 저작물은 우리 사회에 들어왔을 때 다른 정신적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법치와 자유민주주의 연대(NPK) 등 시민단체들은 "김일성을 찬양하는 책이 합법적 채널로 유통되는 것은 헌법에 나온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에 배치되는 것"이라며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간한 도서출판 민족사랑방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1일 국내서 출간된 '세기와 더불어'는 과거 북한 조선노동당 출판사가 펴낸 원전을 그대로 옮겨와 '사실 왜곡' 논란이 일었다.

교보문고를 비롯한 대형 서점들은 '독자 보호'를 이유로 이 책의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편광현,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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