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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하루 10만 원 안전관리자 있었으면 아들은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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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하루에 10만 원만 주면 (안전관리자로) 세워놓을 수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 10만 원 주고 한 사람 세워놨다면 저희 집 자식 안 죽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기업하시는 분들 왜 이러십니까. 하루에 10만 원 아껴서 얼마나 더 부자 되려고 그러십니까."

평택항에서 일하다 숨진 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는 자식의 영정사진이 세워진 추모문화제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앞에는 시민들이 애도의 뜻을 담은 장미꽃을 들고 앉아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가 1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이선호 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억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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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진 아들의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이재훈 씨. ⓒ프레시안(최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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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적 산재사고 막겠다는 대통령의 약속 믿어보겠다"

이재훈 씨는 이날 어지럼증으로 부축 없이는 제대로 서있기 힘든데도 연단에 올랐다. 그리고 "제 아들 사고는 원청이 비용을 절감하고 안전관리자의 인건비를 줄이려고 법에서 정한 적정 수의 안전요원을 투입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며 사측을 질타했다.

이 씨는 "이건(안전조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현장) 일하는 작업장이 아니라 사람 잡는 도살장"이라며 "일하러 갔다 일 마치고 집에 가면 재수가 좋은 사람이고 일하다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거다"라고 애통해했다.

이 씨는 "그런 곳에서 내가 일을 하다 다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일터에 내몰리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나"라며 "그 친구들 학비 보태려고 용돈 벌려고 가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다칠지 죽을지 모르는 일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씨는 "오늘 저희 빈소에 대통령이 왔다 갔다"며 "저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된 사람들의 철저한 처벌, 또 이제 제발 이 슬픔을 끝내시라고 이야기했고 대통령도 '후진적인 산재사고를 막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번 약속 믿고 지켜보겠다"며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이런 슬픈 아픔으로 사는 가족이 안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산재사망 막려면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대로 제정해야"

이날 추모문화제에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참석했다. 김 이사장은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한편 비극적인 산재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시행령을 통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약화시키려 시도하는 재계를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언론을 통해 이선호 군의 소식을 접하고 용균이 사고와 너무 닮은 사고에 힘을 보태고자 용균이 6차 재판이 있던 날 빈소에 다녀왔다"며 "너무 늦게 찾아봬 송구했고 그동안 산재를 막겠다고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별 효과가 없어 죄송한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 수많은 죽음 앞에 유족과 손 잡아준 시민과 언론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기를 강력하게 촉구했으나 기업과 정부의 큰 반발로 취지가 무색한 법을 통과시켜 죽음을 막지 못해 분노가 치밀어오른다"며 "그런데도 경영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에 기업의 의무와 책임을 축소하는 조항을 넣어 책임성을 없애려 한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기업의 최고 책임자가 안전 예산을 얼마나 짜냐에 따라 안전 인력 충원, 안전 장비를 세울 수 있다"며 "이런 사고에 기업의 책임성을 없애는 건 노동자를 계속 죽인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더이상 기업과 정부를 믿지 못한다"며 "우리는 국민이 안전해질 때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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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문화제가 끝난 뒤 시민들은 고 이선호 씨의 사진 앞에 마련된 조형물에 추모의 뜻을 담은 장미를 바쳤다. ⓒ프레시안(최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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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업체 동방, 사고 발생 20여일만에 사과했지만

스물셋 하청 일용직 노동자 이선호 씨는 지난달 22일 원청업체 '동방' 직원의 지시로 평택항 하역장의 개방형 컨테이너 바닥에 있는 나무 합판 잔해를 정리하던 중 300킬로그램 정도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사건을 조사 중인 평택경찰서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는 안전관리자가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는 안전관리자, 수신호 담당자 등이 있어야 한다. 또, 이 씨가 안전장비 없이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씨의 죽음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사고로부터 2주가 흐른 지난 6일이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2일, 국민의힘이 이날 평택항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자 원청업체인 동방은 지난 12일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동방의 사과는 유족과 논의 없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의 요구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구체적인 재발방지책도 담기지 않았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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