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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세 여성의 ‘완전한 독립’을 위한 투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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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투쟁, 여성 참정권 운동, 아일랜드 독립투쟁

테러리스트로만 알려진 세 사람이 꿈꾼 사회변혁


한겨레

여자들의 테러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사계절·1만6000원

브래디 미카코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출신 프리랜서 저술가다. 런던의 일본계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는 번역과 저술 활동을 했고, 보육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탁아소와 어린이집에서 일했다. 아이들을 돌본 경험을 살려 쓴 책이 <아이들의 계급투쟁>이다. 부모의 빈곤과 정서적 불안, 폭력과 무기력이 어린이집의 유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 책으로, 영국의 집권 정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면서 사회 전반의 복지제도가 축소된 이후 영국의 변화를 담았다. 그 연장선에서,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을 통해 경험한 다양성과 차별 이슈를 담아낸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역시 한국에 소개되어 있고, 이번에 출간된 <여자들의 테러>는 보육사로서의 브래디 미카코가 아니라 페미니스트 저술가 브래디 미카코의 관심사를 볼 수 있는 책이다.

가네코 후미코, 에밀리 데이비슨, 마거릿 스키니더 세 사람의 삶을 교차해 보여주는 <여자들의 테러>는 당대에 테러리스트로만 알려졌던 세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고 사회변혁을 꿈꾸었는지를 다룬다.

아나키스트였던 가네코 후미코를 키운 것은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의 빈곤한 삶과 식민지 조선의 삶을 지켜본 결과였다. 혼외자로 태어나 호적에 등록되지 않은 채 성장해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가네코 후미코를 조선으로 데려온 사람은 할머니였다. 가네코 후미코를 양녀로 입적해 좋은 사위를 얻는 도구로 쓰려던 할머니 역시 그를 굶기고 학대했다. 13살에 자살을 생각했던 가네코 후미코는 살아서 복수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복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포함한 무자격자, 이등시민, ‘입이 없는 사람’을 대표해야 했다.

에밀리 와인딩 데이비슨은 여성참정권 운동가(서프러제트)였다. 그의 존재가 기록된 가장 큰 사건은 영국의 유서깊고 권위있는 경마 대회인 엡섬 더비에서 1913년 국왕의 말 앞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은 일. “전투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가 서프러제트 가운데서도 특별히 더 과격한 밀리턴트(무력 투쟁파)”였던 에밀리 데이비슨은 투석, 방화, 폭행 등 다양한 죄목으로 체포되었고, 세상을 뜰 때까지 아홉 번이나 교도소에 갔다.

마거릿 스키니더는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부활절 봉기에서 저격수로 활약했다. 아일랜드인 부모의 딸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성장한 마거릿 스키니더는 아일랜드에 방문할 때 보았던 대농장 지주 영국인들의 아름다운 저택과 아일랜드인이 사는 작고 더러운 집이 보여주는 극명한 빈부 격차에 놀랐다. 학교에서는 ‘영국화된 역사’를 배웠지만, ‘아일랜드 사람이 쓴 아일랜드 역사’는 아일랜드에 대한 판이한 진실을 들려주었다. 마거릿 스키니더가 저격수가 된 배경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을 저격수로 훈련시킨 영국군 소총 클럽이 있었다. 또한 수학 교사였기 때문에 거리를 측정해 폭탄 공격을 위한 상세 도면을 그릴 수 있었다.

한겨레

에밀리 데이비슨의 장례식. 여성참정권 운동가(서프러제트)였던 에밀리 데이비슨은 1913년 영국의 유서깊은 경마대회인 엡섬 더비에서 국왕의 말 앞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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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 에밀리 데이비슨, 마거릿 스키니더. 세 여성을 묶는 단어는 ‘독립’이다. 목숨을 걸고 구하는 완전한 독립. 빈부격차, 가부장제, 제국주의와 식민지를 비롯한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을 때, 체제에 잘 적응하는 방식으로 독립이 주어지는 것은 아님을 세 사람은 직시했다.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통치받아서는 안 된다.” 주권의 회복은 통치자에게서, 부자에게서, 기득권층에게서 주권을 돌려받는 것이지 살려달라고 부탁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에게 이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한 사건은 3·1운동이었다. 브래디 미카코는 3·1운동에 대해 이렇게 썼다. “식민지 지배자들과 어떤 교감이나 교섭도 없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는 모두가 ‘독립 만세! 만세!’라고 외치며 돌아다니는 전대미문의 봉기 운동이었다.” 그로부터 7년 후 가네코 후미코가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 그가 법정에서 “만세!”라고 외친 것은 그 영향이었다.

<여자들의 테러>는 세 사람의 성장과정을 공들여 보여준다. 또한, 그들이 저항하고자 했던 체제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가혹한지 역시 세세하게 기록했다. 에밀리 데이비슨은 교도소에서 강제 음식 주입, 독방 창문을 통한 물대포 분사 등을 겪었다. 이 모든 일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겠다는 정치권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현대의 독자들에게 놀라울지도 모르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이 되어서야 여성의 선거 참여를 허용했고, 스위스는 1971년에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세 사람의 삶을 교차시키는 작업이 <여자들의 테러>에서 이루어지지만, 그들이 혼자만의 생각과 수단으로 테러리스트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책은 아니다. 주변인들과의 교류와 협력, 갈등과 파국 등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서프러제트였던 에밀리 데이비슨과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싸웠던 마거릿 스키니더의 삶은 특히 여성들과의 교류가 중요했다. 마거릿 스키니더에게는 후일 영국 하원의회 최초의 여성 의원이자 서구에서 처음으로 여성 장관(아일랜드공화국 노동장관)이 된 마키에비치 백작 부인, <아일랜드의 여성들>이라는 신문의 편집 책임자였던 여성운동가 헬레나 몰로니 등이 중요한 인물이었다. 에밀리 데이비슨은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이끌던 여성사회정치연합의 온건한 기조와 거리를 두고 무장투쟁의 길을 갔다. 그는 착취당하는 계급 안에도 상하가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아나키스트인 박열과 함께였다.

전기적 사실의 빈틈을 상상으로 메우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여자들의 테러>가 사용하는 표현들은 ‘사나운 모나리자’(에밀리 데이비슨에 대해), ‘절대 자연아 후미코’(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반역의 혼’(마거릿 스키니더에 대해)을 비롯해 다소 극적이고 과장되어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둘 것.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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