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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울고 싶은 기분으로 통과한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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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창비·1만4000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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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사진)의 네 번째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발표한 일곱 단편이 실렸는데, 표제작을 비롯해 절반 남짓이 일종의 연작처럼 읽힌다. 작가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이별한 누군가와 재회하는 내용”으로 그 작품들을 한데 묶을 수 있겠다.

표제작에서 화자인 ‘나’는 지난날 잠깐 인연을 맺었던 기오성에 관한 인터뷰에 응해 달라는 다큐멘터리 피디의 연락을 받고 그와 함께했던 대학 시절을 돌이킨다. 두 사람은 어느 노교수의 종택 족보 정리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게 되는데, 머지않아 화자는 둘 사이에 “사랑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교수의 손녀인 강선을 둘러싼 오해가 불거지면서 둘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멀어지고,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둘은 어색하게 재회했다가는 다시 헤어지고 만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 시절을 통과했다”고 화자가 술회할 때, 거기에서는 서투르고 막막했던 청춘에 대한 회한이 만져진다.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크리스마스에는’ ‘마지막 이기성’ 세 작품은 표제작과 비슷하게 서투른 연애와 이별 그리고 어색한 재회를 다룬다.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에는 삼수생인 화자 ‘나’와 의대에 입학했지만 적응에 실패한 ‘장의사’ 그리고 장의사가 크게 의지하는 조교 형이 등장하는데, 표제작에서 강선이 했던 역할을 여기서는 조교 형이 한다. “젊은 우리가 관심을 둘 만한 모든 영역에 선경험이 있는 사람”인 조교 형이 사실은 “아름다움을 정확히 훼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고 화자가 좀 더 성장한 뒤에나 알게 된다. 이중의 배신을 당한 장의사는 결국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되고, “안녕,이라는 말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반복해서 물을 수 있고 그렇게 물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화자는 뒤늦게 깨닫는다.

‘크리스마스에는’의 화자인 케이블 방송 피디는 대학 시절 사귀었던 현우를 프로그램 출연자로 섭외하고자 부산으로 가고, ‘마지막 이기성’의 주인공 이기성은 유학 시절 연인과 함께 교정에 묻었던 타임캡슐을 개봉하러 도쿄로 간다. “피하고 싶다는 마음과, 마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했다는 것은 이기성의 경우이지만, 타임캡슐을 개봉한 이기성처럼 나머지 인물들 모두 지난날을 다시 대면하면서 “자신이 알아내야 할 삶의 마지막 진실을 만져보는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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