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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공구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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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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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여성 메이커를 위한 공구 워크숍

에밀리 필로톤 지음, 케이트 빙거먼버트 그림, 이하영 옮김/학고재·2만2000원

화장실 변기에 물이 샐 때, 갑자기 두꺼비집이 내려갔을 때, 방전된 자동차의 시동을 걸 때, 혼자 사는 여성들은 곧잘 ‘사람’을 부른다. 그렇게 호출된 사람은 남성일 때가 많고, 수리가 끝날 때까지 처음 본 남성과 단둘이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무언가를 고치는 일 앞에서 여성은 자주 구경꾼이 되고, 방관자가 되며, 어린아이가 된다.

<언니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는 그런 여성들을 위한 워크북이다. 디자이너이자 건축업자인 지은이 에밀리 필로톤은 2013년 비영리단체 ‘걸스 개라지’(Girls Garage)를 설립하고 여성 청소년에게 ‘만들기’를 가르쳐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위치한 334㎡ 작업공간에서 여성 청소년들은 작게는 공구함부터, 크게는 노숙인 단체에 기부할 나무 벤치까지 만들었다. 지은이는 만들기의 A부터 Z까지 체계화해 책에 수록했다. 안전수칙, 공구 175가지의 이름과 쓰임새, 치수 표기·직각 확인법 등 실전에 동원되는 필수 기술, 변기 수리법·페인트 칠하는 법처럼 집을 고칠 때 필요한 수리 기술 등을 망라했다.

걸스 개라지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조차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지만, 몇 가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확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약속이다. 지시대명사 ‘그것’은 이곳에서 금기어다. 지은이는 자신을 ‘꼬마’라고 부르는 철물점 직원에게 “4.4㎝ 태프콘 콘크리트 나사를 찾았다”고 답한 뒤 느낀 쾌감을 전하며 이렇게 말한다. “삶에서도, 만들기에서도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이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일은 강력한 힘을 지닌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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