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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후 위기의 역사성을 따져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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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미래가 불타고 있다: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

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순희 옮김/열린책들(2021)

나는 역사를 공부해서 시대와 연도에 민감하다. 외국 문학을 읽을 때 인물의 나이와 삶을 한국사의 타임라인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다. 예컨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시대적 배경은 유럽인들이 말하는 ‘벨 에포크’였다. 19세기 말에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유럽은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에게는 강제 개항과 국권 침탈을 겪은 최악의 시기였다. 문학 작품에 나오는 유럽의 낭만과 풍요는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의 고통과 눈물로 떠받친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

나오미 클라인은 <미래가 불타고 있다>에서 화석연료의 시대를 폭력적인 ‘도둑 정치’로 비유한다. 기후 변화는 서양인들이 스스로 ‘문명화의 사명’을 자처하고 나섰던 18,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백인 우월주의와 제국주의로 무장한 그들은 식민지의 자원을 무자비하게 수탈하며 전 세계에 산업화와 자본주의를 뿌리내렸다. 근대 자본주의는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탄소배출과 무한소비, 생태계 고갈로 유지되는 경제 체제다. 태생적으로 식민지의 노예와 자원 없이, 원주민이나 유색인종의 숲과 강, 땅을 빼앗지 않고서는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기후 위기가 닥치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다시 가난한 나라에 그 피해를 떠넘기고 있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하나였던 적은 없었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선진국 부자들, 기후변화 부정론자, 극우파, 인종차별주의자, 보수주의자에게 지구 공동체 정신이나 인류애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들 마음속에는 어떤 상황이든,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살아남을 것”이고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나오미 클라인은 <쇼크 독트린>에서 소수 엘리트 계층이 재난 상황을 이용해서 공공재를 착복하고 부를 늘려왔음을 고발하였다. 그녀는 기후 붕괴가 가속화될수록 인종 혐오와 백인 우월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에 서열을 매기고 타인을 배제했던 경험은 화석연료의 시대를 연 식민주의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불평등과 빈곤, 전쟁, 인종 차별, 성폭력과 같은 사회적 병폐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기후 위기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면적인 위기다. 부자 나라의 자본가나 권력자들은 기후 재앙에 대처할 능력도 없으며, 의지도 없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자유시장주의를 분쇄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책에서는 ‘기후 정의’를 외친다. “경제 정의, 인종 정의, 젠더 정의, 이주민 정의, 그리고 역사적 정의까지” 정의 없이는 기후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고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에너지 민주주의만이 아니다. 우리는 에너지 정의, 더 나아가 에너지 배상도 필요하다. 지난 200~300년 동안 에너지 생산 산업과 그 밖의 더러운 산업의 발전 과정은 가장 가난한 공동체들에게 극히 미미한 경제적 혜택만을 주는 대신에 지나치게 막중한 환경적 부담을 안겨 왔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근대사를 기후 변화와 관련해서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이 아닌 정의와 복원의 관점에서 우리의 과거를 성찰해야, 기후 위기에 맞서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과학저술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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